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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그리고 교양

꼬꼬무 148회 '인간사냥 - 피라미드의 덫'

by 드라마 보는 망고 2024.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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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48회

'인간사냥 - 피라미드의 덫'

 

 

| 친구들이 말하는 돈 버는 방법

1998년 20대 초중반의 젊은 남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에게 연락을 받은 친구는 3일 아르바이트를 제안받고 강남으로 모였다. 친구들이 도착한 곳은 강남에 있는 다단계 업체로 회사이름은 SMK이다. 

 

숭민코리아는 연매출 6천억으로 전국에 대리점이 수백 개 있었다. 판매원은 20만 명으로 강남에 빌딩을 통째로 쓰는 중견 기업이었다. 그 모든 걸 다단계 방식으로 이루었다.

 

다단계 회장의 주장에 따르면 내가 3명만 데려오면 어느 순간 내가 일을 안 해도 돈이 끊임없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 유혹의 시작

늦은 밤에 강연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 친구들은 집에 가지 못했다. 친구들은 어두운 골목에 반지하에 내려가니 좁은 방에 남녀가 가득했다. 그곳은 일명 합숙소였다. 같이 있는 이유는 24시간 동안 같이 있으면서 빨리 성과를 내기 위함이라고 했다.

 

친구들은 친구와 약속한 대로 3일은 있어보기로 한다. 합숙소에는 '건강 자기요'가 가득 쌓여있었다. 자석요의 가격은 당시 520만 원이었다.

 

자석요는 1년에 천억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대부분 자석요는 SMK 판매원들이 구입했다. 

 

20대 초반에 청년들은 자석요를 구매할 돈이 없기 때문에 둘 째날 강연에서는 이 돈을 어떻게 구할지를 알려줬다. 지인에게 빌리거나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학자금 대출까지 추천했다.

 

그렇게 SMK 판매원이 된 청년들은 친구들 리스트를 작성한다. 설득할 상대의 경제 상황, 성격, 인맥 파악은 기본이었다. 대상을 설득하기 위해 상위 판매원들까지 모여서 상의를 했다. 

 

당시 강남거리에는 공중전화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10년 전인 1988년 8월

국내에 글로벌 기업인 재팬 라이프 코리아가 등장한다. SMK의 자석요를 처음 개발한 기업이 바로 재판 라이프이다. 재판 라이프는 70년대 후반부터 피라미드식 판매를 해왔는데 피해자만 이미 3만 명에 달했다. 문제가 많은 회사로 정치자금 상납 문제로 일본 국회에서도 논란이 되었던 회사이다.

 

일본에서 더 이상 일하기 힘들어진 재팬 라이프는 한국 진출을 결심한다. 사실 재팬 라이프 뒤에는 일본 야쿠자 세력이 있었다. 재팬 라이프 야쿠자는 한국의 조폭 두목과 손을 잡았다. 그 결과물이 재팬 라이프 코리아였다. 

 

정에 약하고 거절 못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다단계 판매 방식에 최적이었다. 초반에 다단계는 큰 성공을 거두며 큰돈을 벌어주었다. 하지만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그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폭력 조직원이 대거 검거되었다. 다단계 회사의 한 축인 한국 조폭 두목이 범죄단체 조직 혐의 등으로 구속된다. 

 

 

조폭 두목이 빠진 자리를 당시 40대 이광남이 신임 사장 자리로 들어간다. 그는 다단계 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다단계 판매에 관한 법률이 없었던 시기로 불법도 합법도 아닌 입법 미비의 영역이었다. 

 

위기에 봉착했던 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다. 대리점만 전국에 6천 개가 있었다. 초반 4년간 매출이 무려 8천억 원이 달했다. 

 

이광남은 피라미드의 대부라고 불렸다.

 

판매원들은 사람을 유치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합숙소 생활은 길어졌고 20대 청년들은 굶어야했다. 판매원들은 서너 달이 지나고 나서야 피라미드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20대 청년들에게 남은 것은 자석요과 빚 밖에 없었다. 

 

다단계 피해도 소중한 가족을 잃은 피해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회사는 사건에 대해 판매원들이 싸운 거라며 자신들은 합법적인 마케팅 교육만 했다고 주장했다.

 

1992년 피라미드식 판매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넣은 방문판매법이 시행된다. 그때 회사는 산융 산업에서 숭민 산업으로 회사 이름을 바꾼다.

 

이광남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그리고 벌금 1억 원을 선고 받는다.

 

얼마 후 방문판매법에는 다단계 업체는 제조와 판매를 겸할 수 없다고 개정된다. 다단계 업체는 제조사와 판매사를 분리해 두 개의 회사를 운영한다.

 

그렇게 생긴 판매사가 숭민코리아종합유통(SMK)이다. 

 

IMF 외환위기 시절 전 국민 금 모이기 운동이 한창이었던 때 이광남 회장은 95개의 금괴를 들고 나타났다. 당시 시가로 14억 2,500만 원 정도의 금이었다. SMK는 이 일로 이미지 세탁에 성공한다.

 

그리고 여자축구단 숭민원더스를 창단한다. SMK가 스포츠 업계에 투자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다단계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자석요 가격이 부담되었던 청년들에게 SMK는 현금이 아닌 카드로 결제가 가능하게 했다. 

 

 

당시는 신용카드가 폭발적으로 발급됐던 시기였다. 정부가 경기부양과 세금징수를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고 있었다. 

 

신용카드를 사용한 현금 대출이 3년 만에 7배나 증가했다. 다단계 업체의 매출도 3년 만에 10배가 증가했다.

 

빚을 진 청년들이 자살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친구들이 구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움직였다. 다단계에 대해 알아보고 하이텔에 글을 써서 이 사실을 알렸다. 학생들은 모여 안티피라미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안티피라미드는 회사 앞에 가서 이 회사가 다단계임을 알리고 SMK는 안티피라미드에 협박 전화를 하기도 했다. 안티피라미드는 다단계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기관들의 홈페이지를 다운시켰다. 당시에는 새로고침(F5)을 동시다발적으로 누르면 서버가 다운되던 시절이었다.

 

다단계 피해자들부터 가족, 침구들까지 전부 합세한 온라인 활동이었다. 이 활동으로 SMK에 대한 수사가 재개되었다. 이광남 회장의 자녀들이 최상위 등급에 등록된 적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회사 간부들의 친인척들까지 피라미드 꼭대기 층에 등록되어 있었다.

 

공정위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준 혐의도 밝혀진다. 결국 이광남 회장은 구속수감된다. 판매원들에게 가입비 명목으로 5,765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였다. 

 

재판 결과는 과대광고 인정, 법인세 포탈 혐의 인정 하지만 다단계 사기 혐의는 무죄를 받았다. 그렇게 이광남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번에도 그는 형을 살지 않았다.

 

SMK는 돈은 회사가 벌지만 책임은 판매원이 지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시스템을 설계했다는 것만으로는 사기죄 입증이 어려운 현실이었다. 다단계 판매 자체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출이 급락하면서 SMK는 2004년 최종 부도 처리된다. 이광남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4년 뒤 국세청이 공개한 신규 고액 체납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광남은 세금 463억 원을 체납했다. 이후 이 회장은 2016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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