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49회
'사형수 유영철'
| 26년만에 열린 비밀의 장소
현재 우리나라는 59명의 사형수가 수감 중이며 가장 최근에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는 2016년 사형선고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임 모 병장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건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이 집행된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26년만에 사형 집행장의 문이 다시 열렸다. 대구 교도소에서 서울 구치소로 사형수들이 이감된다.
수감자들에게는 명찰이 붙어있는데
- 흰색 : 일반 수용자
- 노란색 : 소폭 등 주의가 필요한 대상
- 파란색 : 마약사범
- 빨간색 : 사형수
유영철은 교도소에서 홀로 격리된 지 20년이 되었다. 교도관은 무려 7년간 매주 4시간씩 유영철을 상담했다.
| 목요일의 괴담
어느 무더운 여름밤 성매매 알선을 해주던 포주 정 씨에게 연락이 두절되는 여성들이 계속 발생했다. 이틀 전 사라진 임 양의 차가 엉뚱한 동네에서 발견되었다.
정 씨가 생각하기에 여성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7월 초부터였다. 다른 여성 김양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 지금 납치되고 있어
김양은 이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정 씨가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전화를 꺼져있었다. 사라진 임 양과 김 양의 가게장부를 확인하던 정 씨는 손님의 휴대전화 뒷번호가 같았다.
정 씨는 업체 사람들에게 5843 휴대전화가 확인되면 자신에게 연락을 하라고 한다. 그때 전화가 걸려오고 정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형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여성을 보고 퇴짜를 놓던 5843은 여자를 바꿔주겠다고 하니 만남 장소를 계속 바꿨다. 정씨 일행은 전화를 하는 남자를 보고 남자를 덮친다. 남자는 입안에 성매매 홍보용 광고전단 9장을 먹어버렸다.
지구대는 남자를 체포해 여자들의 행방을 묻는데 남자는 대끔 자신이 안 죽였다고 한다.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서울 서남부 일대를 중심으로 총 13명이 사망한 살인사건
수사관은 처음엔 유영철과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과의 관련성을 의심했다. 목요일의 괴담은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훗날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은 정남규의 밝혀진다.
정남규는 2006년에 체포되었고 유영철이 체포된 2004년 당시에는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은 미제 상태였다.
다수의 전과가 있었던 유영철은 전단지를 삼킨 이유를 출소한지 얼마 안 돼서 괜히 엉뚱한 일에 얽히기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휴대전화도 길에서 주웠다고 한다.
경찰은 유영철의 지갑에 달려있는 악세사리를 황학동에서 천 원에 샀다고 한다. 하지만 액세서리를 자세히 보면 18K라고 찍혀있었다. 고리의 정체는 여성용 발찌였다.
당시 서울에는 서울 부유층 노인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유일한 단서는 CCTV 뒷모습 영상이었다. 수사관은 용의자와 똑같이 옷을 입혀 같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어보라고 한다.
내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특진 시켜 주겠어
그러더니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해서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종이에 '바를 정'자를 6개 적었다. 그 숫자는 본인이 살해한 피해자의 숫자였다. 그리고 서울 부유층 노인 연쇄 살인범이 자신이라고 자백했다.
피해자의 암매장 장소를 적었다.
2003년 10월 환갑을 맞은 고 씨는 노모, 아내, 아들과 함께 구기동 단독 주택에 거주 중이었다. 고 씨는 운영하던 회사를 정리하고 얼마 전부터 경비일을 다시 시작했다. 퇴근을 하고 들어간 집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집 벽난로 앞에는 아내가 쓰러져 있고 몸이 차가웠다.
2층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 올라가 보니 아들이 숨져있었다. 화장실 앞에는 어머니가 숨져있었다. 출가한 두 딸을 빼고 온 가족이 사망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지만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구기동 사건을 이후로도 총 4건의 서울 부유층 노인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첫 시작은 2003년 9월 24일 2명이 사망한 신사동에서 벌어졌다. 생일날 부모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찾아간 아들은 살해당한 부모님을 발견했다.
범인이 방을 뒤진 흔적은 있었지만 현금, 수표, 귀금속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 4사건의 공통점
1. 단독주택 거주
2. 대낮 - 집에 있는 주부나 노인들이 범행 대상
3. 금품피해 X
유영철의 자백을 들은 경찰은 유영철을 데리고 구기동 사건이 벌어진 집으로 향했다. 경찰은 유영철이 진짜 범행 장소를 아는지 확인하기 위해 걸어서 찾아가 보라고 한다.
주저 없이 걸어가던 유영철은 범행 현장인 고 씨 집 앞에서 멈췄다. 하지만 범행집으로는 다른 집을 지목했다. 혜화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뉴스에서 폴리스 라인 쳐진 장면을 보고 찾아온 거예요.
현장검증을 나서기 전 유영철은 어머니와 쌍둥이 여동생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를 본 유영철은 어머니에게 살해에 대해 고백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유영철은 쓰러진 어머니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유영철이 경찰서로 돌아온 뒤 도주했다. 유영철은 간질 발작 증세를 보여 수갑을 잠시 풀어준 틈을 타 도주했다. 간질 발작 증세를 거짓이었다.
기동수사대 전원을 소집해서 유영철을 잡기 위해 출동했다. 그리고 긴급 수배 전단지를 뿌렸다. 하지만 성과 없이 시간만 흘렀다.
유영철 엄마와 여동생은 늦은 시간 귀가 중이었다. 그 모습을 잠복 중이던 형사가 발견했다. 딸이 불었다고 다그치자 어머니는 신촌의 오피스텔에 유영철이 숨어있다고 했다. 하지만 유영철은 사라지고 없었다.
형사들은 영등포역으로 향했다. 경찰은 유영철이 신촌에서 포주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얼굴에 멍이 들었다며 계란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사람을 잘 확인하라고 한다. 영등포 역 앞에서 신호 대기를 하고 있던 경찰은 계란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남자를 발견한다.
유영철은 도주 11시간 만에 재검거를 성공한다. 잡혀온 유영철은 모든 범행을 실토한다.
| 유영철의 범죄 행각
유영철이 첫 살인을 저지른 건 강간 등의 죄로 징역 3년 6개월 복역 후 출소한 지 불과 13일 만이었습니다. 유영철은 사회에 대한 분노를 품고 부유층을 상대로 범행을 계획한다.
유영철이 처음 구속이 되었던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유영철은 옆집에서 절도를 한 죄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유영철은 신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유영철은 신에 대한 보복으로 교회 앞 단독 주택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유영철은 CCTV에 자신의 모습이 찍힌 뒤로는 집을 침입하지 않고 성매매 여성을 자신의 오피스텔로 불러들여 살해했다. 총 11명의 여성을 살해 후 암매장했다.
유영철은 여성들이 실종돼도 찾을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그들을 범행의 대상으로 삼았다.
유영철은 기동수사대에서 도주하자마자 어머니와 여동생을 오피스텔로 호출했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범행도구를 모두 버려 증거를 인멸했다.
유영철 집에 루미놀 시약을 뿌리자 혈흔이 발견되었고 집 주변에선 범행 도구를 찾아냈다. 범행도구는 쇠망치였는데 편의성을 위해 손잡이를 짧게 유영철이 제작을 했다고 한다.
유영철이 암매장했다고 하는 장소를 파보는데 피해자들이 발견되었다. 총 11구의 피해자 시신이 발견되었다. 유영철이 암매장 장소를 기억 못 해 끝내 찾지 못한 피해자도 존재한다.
유영철에게 확인된 피해자만 총 20명이다.
사람을 죽이는 두려움보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고통이 훨씬 크다
유영철은 사이코패스였다.
| 유영철의 교도소 생활
잠을 못잔다고 호소한 유영철은 자신이 죽인 여성들이 나타나 자신을 괴롭힌다며 피곤하다고 했다. 수감 초기 유영철은 한 언론자 기자와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아내와 아들에 대한 애착이 심했던 유영철은 가족 사진과 영상을 자주 찍었다. 결혼 생활 10년 중 7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그는 결국 교도소에서 강제 이혼을 당하고 양육권을 박탁당했다. 체포되기 나흘 전에도 할머니 제사에 아들과 참석했다.
유영철은 검거된 후 마스크에 자신이 직접 '아빠'라고 적었다.
유영철에게 아내와 엄마 그리고 아들을 잃은 고씨는 유영철을 용소하고 다시 살기로 결심한다. 고씨는 유영철이 사형이되지 않게 탄원서를 제출하고 교도소 면회도 신청했다.
유영철은 고 씨를 면회하지 않았다. 유영철은 피해자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지는 못할 망정 살해과정에 대해 얘기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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