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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그리고 교양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105회 줄거리 리뷰 '히로시마 카운트다운'

by 드라마 보는 망고 2023.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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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드라마 보는 망고예요.

1945년 그곳에 한국인이 있었다. 1945년 당시 여섯 살이던 형률의 엄마 곡지는 일본 히로시마에 살고 있었다. 먹고살기 위해 경남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곡지네 가족은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곡지네 가족 말고도 한국인이 무려 8만 명이 살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인류 최악의 무기가 떨어질 예정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05회

| 엄마의 비밀

형률은 병명도 모른채 기침을 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형률 씨는 쌍둥이였는데 동생이 똑같은 증상으로 2살이 채 안되어 사망했다. 형률이 25살이 되던 해에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되는데...

 

면역글로불린 M 증가가 동반된 면역 글로불린 결핍증
폐렴, 중이염, 패혈증 등의 반복적인 감염과 소아에서 종양의 높은 발병률을 동반하는 질환

 

의사는 생존률이 높지 않다며 30살을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형률은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다 논문을 발견하는데 어떤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이 단어를 들은 어머니는 네가 아픈 건 자신 때문이라고 한다. 

 

폴 티비츠와 클로드 이덜리는 탑 티어급 비행기 조정사이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일본 히로시마에 리틀보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조정사였다.

 

 

 

형률의 병을 본 주치의는 논문에서 어머니 곡지의 피폭 사실을 언급했다. 

 

곡지와 여동생은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곡지네 가족은 먹고살기 힘들어서 일본 히로시마로 넘어갔다. 곡지의 아버지는 목욕탕에서 잡부일을 하면서 논을 살 돈이 모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 비극의 시작

아인슈타인은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다.

각하,
독일이 체코 점령후
체코 광산의 우라늄 판매를 중지시켰습니다.

그 우라늄 원소를 새롭고
중대한 에너지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폭탄 개발을 뜻하고
극도로 강력한 폭탄이 될지도 모릅니다.

조만간 개발에 성공할 것이 확실합니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이 원자폭탄을 만들기 전에 미국이 나서야 한다는 편지를 쓴 것이다. 당시 독일은 히틀러가 지도자로 있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하고 이탈리아, 일본과 동맹을 맺고 주변국을 침략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연합군을 결성해서 싸운 전쟁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다. 

 

전쟁 기간 6년 동안 사상자만 약 5,500만 명에 달했다. 전쟁 직전에 이 편지를 받은 루스벨트는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지시한다. 

 

 

 

3년 간의 연구 개발 끝에 미국은 1945년 7월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실전용 원자폭탄 2개 리틀보이와 팻맨이 만들어진다.

 

원자폭탄 2개는 비행기 조종사 폴 티비츠와 클로드 이덜리가 있는 티니안 섬으로 운송되었다. 이 폭탄들은 곧 일본으로 운송될 예정이었다.

 

| 히로시마 카운트 다운

원자폭탄은 독일이 아닌 일본으로 간 이유는 히틀러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관계자들은 원자폭탄을 실전에 사용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독일과 일본은 항복을 했는데 일본은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의 사상자만 20만 명이 넘어 미국 내에 반일감정이 최대치였다. 

 

연합국은 일본에 즉각적인 항복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요구를 묵살했다. 일본이 분리한 상황이었지만 천황패하를 위해 죽겠다면 항복하기를 거절했다. 

 

미국은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장소를 논의했는데 수도인 도쿄는 많은 공습을 받아 폐허가 되어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 팀은 공습을 덜 받은 지역 중 평탄한 지형 5km 이상 되고 인구가 많은 곳으로 정했다. 

 

그런 이유로 최종 후보는 히로시마, 고쿠라, 나가사키가 선정된다. 폭발 성공을 확인하려면 레이더가 아닌 육안으로 목표물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기상관측을 위한 전투기 3대가 히로시마, 고쿠라, 나가사키로 출격한다. 고쿠라와 히로시마 기상이 안 좋은 반면 나가사키는 날씨가 좋았다. 그때 히로시마에 출격한 조정사의 구름이 걷히고 있다는 무전이 들어온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목표지점은 아이오이 다리였다 T자형 모양으로 항공에서도 잘 보였기 때문이다. 이 다리에서 1.5km 떨어진 곳에 곡지네 집이 있었다.

 

| 히로시마의 그날

오전 8시 리틀보이를 실은 B-29 폭격기가 히로시마에 진입한다. 리틀보이는 지상 550m에서 폭발하게 설계되어있었는데 그때가 가장 파괴력이 높은 위치였다. 폭심지 반경 3km 내에 건물들은 대부분 붕괴되었다.

 

 

 

폭발 직후 약 8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폭발 1시간 후 갑자기 비가 왔다. 폭발과 화재로 덥고 목말랐던 사람들은 그 빗물을 받아먹었다. 그 비는 폭발로 하늘로 치솟은 폭발 열기와 잔해가 차가운 공기층과 만나서 내린 것이었다. 그 비안에는 방사능이 농축되어 있었다. 방사능 피폭 시 세포가 파괴되고 염색체 변이가 일어난다.

 

히로시마 한국인 중 원폭 사망자는 약 3만 5천 명이었다. 미국은 히로시마로 사람을 보내 원자폭탄으로 인한 피해가 어떤지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때까지도 항복을 하지 않은 일본에 미국은 1945년 8월 9일 두 번째 원자폭탄 팻맨을 군수도시인 나가사키에 투하한다. 그렇게 일본이 항복하고 식민지였던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한다.

 

곡지 가족도 한국으로 돌아온다. 곡지씨와 가족은 원폭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겼다. 히로시마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원자병에 걸렸다며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형률 씨는 자신이 원폭 피해자 2세라고 알렸고 원폭 피해자를 찾아다녔다. 원폭의 피해는 다양하게 나타나 입증이 쉽지 않았다. 열심히 피해자를 찾아나섰고 원폭 피해를 입증 하려고 노력했던 형률씨는 35살에 이른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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