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사 보는 망고예요 o(* ̄▽ ̄*)o 오늘은 꼬꼬무에서 홍범도장군 얘기를 했네요 귀환하실때 공군영상을 보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감동이야기 리뷰합니다.
2021년 여름 늦은 밤 대학교 연구실로 의문의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시신을 찾아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시신을 찾아나선 곳은 카자흐스탄이였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벅찬 마음에 눈물을 참지 못했다는데... 78년 동안 묻혀있던 시신, 과연 누구의 것이었을까?
오늘의 주제 - 호랑이 잡는 사냥꾼 이야기입니다.

서울에 한 대학교로 걸려온 시신을 찾아달라는 전화.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당시 장례지도학과 박채원교수였다. 카자흐스탄(러시아 아래 중국 옆에 위치)에 있는 시신을 찾아달라(?) 시신이 존재 여부는 가봐야 안다는 것이다. 시신의 주인공은 카자흐스탄 시골 마을의 극장 수위로 일했다고 한다.
시신의 주인공은 전설의 총잡이
때는 1895년 10월 8일 새벽 한양 경복궁
수백명은 되어보이는 일본군$자객이 경복궁에 나타난다. 그들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려 경복궁에 침입한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후는 시해되고 시신은 불에 태웠다. 그들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칼에 "일순전광자노호"(늙은 여우를 단칼에 베었다.)라고 새겨넣었다. 전국으로 확산된 국민의 분노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타이거 헌터이다. 당시 나이 27살, 키190cm
이제부터 호랑이가 아니라 왜놈을 잡는다.
이렇게 모인 포수가 68명이었다.
홍대장은 바로 홍범도이다.

백두산에 모인 산포수 의병대!

의병대가 주로 활동했던 지역이다. 1년동안 치른 전투만 60번이다. 전적은 60전 60승
홍대장의 승리 비결은 "호랑이 잡듯이 왜놈을 잡으면 된다."
당시 사용한 총은 화승총으로 불을 계속 붙여야하고 두번째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한번에 성공해야했다. 의병대는 모두가 저격수였다. 일본군은 홍범도의 아내를 끌고가 고문을 시작했다.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아내는 숨을 거두었다.
홍범도 장군의 일지
일본군 500명과 싸움하여 107명이 죽고
내 아들 양순이 죽고 의병은 6명이 죽고 중상자가 8명이 되었다.
그때 양순은 중대장이었다.
5월 18일 12시에 내 아들 양순이 죽었다.
총을 구할수 없었던 의병들은 만주로 근거지를 옮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다. 홍범도장군은 의병을 군대 조직으로 재편한다. 그게 대한독립군이다.

당당한 독립군으로 몸을 포연탄우 중에 던져
반면년 역사를 광격케하여 국토를 회복하여
자손만대에 행복을 줌이 우리 돌립군의 목적이요
민족을 위하는 길이다.
대한민국 원년(1919년) 12월
노령 주둔 대한독립군 대장 홍범도
1920년 6월 4일 새벽 두만강
두만강을 건너 국경 근처 일본군 소대 기습 공격을 한다. 놀란 일본군이 떼로 몰려오면 두만강을 건너서 되돌아왔다. 일본군 월강추격대가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소탕하겠다(?) 당신 일본의 군사력은 세계3위였다. 봉오동(두만강 끝자락)에 다다른 일본군. 봉오동은 골짜기가 긴 분지지형이다. 독립군이 분지를 둘러 700명이 숨어있다. 독립군 선발대가 골짜기 입구에서 일본군을 유인한다. 입구부터 10km떨어진 지점까지 유인한 선발대.
됐어. 지금이야
그렇게 이기나 했으나 총알이 바닥을 드러냈다. 우왕좌왕하는 일본군. 갑자기 하얀 연기가 산을 덮고 비가 쏟아졌다. 엄지 손가락만한 우박을 쏟아져서 일본군이 후퇴한다. 그렇게 대한독립군은 승리하였다.
봉오동전투는 일본군과 대한독립군이 제대로 붙은 첫번째 전투였다.
피의 복수를 계획하는 일본인
이름하여, 간도 지방 불령선인(독립운동가) 초토화 계획! 즉, 간도에 있는 독립군을 모조리 없애겠다는 계획.
새로 소집된 2만 5천명의 일본군 이에 반해 2천여 명 정도의 독립군. 대한독립군은 본거지를 봉오동에서 청산리로 옯긴다.
첫번째 전투 백운평 -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부대 완승!
두번째 전투 완루구 - 홍범도 정군이 이끄는 부대 완승!
작전) 남쪽의 일본군을 산 정상으로 유인했다. 홍범도 장군은 후퇴를 명하고 산아래로 내려간다. 일본군은 이긴걸로 착각하고 산 정상을 차지했다. 이때 북쪽에서 올라오는 일본군은 산정상에 독립군이 있다고 착각 일본군끼리 자멸전을 벌이게 된다.
6일동안 10번의 전투가 벌어졌고 이를 청산리 대첩이라고 부른다. 10전 10승

한 조각 붉은 마음
해당 지역에 있는 부인들은 음식을 준비하여 우허을 무릅쓰고 전선으로 와 전투에 피로한 우리 군을 위로했다. 어떤 군인들이 먹지 않을 때에는 부인들이 권하기를 '여러분이 만일 이를 먹지 않으면 우리는 돌아가지 않겠노라' 기어이 취식하도록 하여 군인들이 큰 위안을 받게 하였다.
독립군에서 먹을 거와 돈을 주는 간도 지방에 조선인을 일본군은 보이는데로 살해했다. 무려 3천 7백여 명이 죽고 폐허가 된 마을. 이 사건을 간도참변이라고 한다.
이때쯤 홍대장은 둘째 아들(병에 걸린) 마저 잃게된다. 간도참변으로 독립군은 흩어지게 되고 홍대장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간도참변이 한참일때 홍대장은 러시아로 피신했다.
갈 곳도 없고 하니 러이사로 와서
우리 혁명군을 도와주십시오
그럼 우리가 대한민국의
독립투쟁을 지원하겠습니다.
그렇게 홍범도 장군은 러시아로 망명을 하게된다. 오직 독립을 위해서...

소련이 건국되고 홍범도 장군은 소련군 대위로 편입이 되었고 공산당에도 가입했다. 대한민국 독립투쟁을 지원하겠다고 한 소련은 깜깜무소식이였다. 이에 홍범도장군은 군복을 벗고 농부가되었다. 고려인 1세대 중심에 홍대장이 있었다. 그렇게 고려인들도 자리를 잡아갔다.
1937년 고려인 강제 이주
다짜고짜 고려인들은 열차를 타라는 소련 정부. 안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처형했다. 열차로 이동중 죽은 사람은 500명으로 추정되나 더 많았다는 얘기도 있다. 40일을 달린 열차는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해서 시베리아를 지나 도착한 곳을 카자흐스탄이였다. 강제 이주된 고려인은 무려 17만여명이였다.
고려인 강제 이주한 이유는?
일본인과 닮아서...조선인중에 일본의 첩자가 있을 수 있다(?)
고려인은 황무지를 농지로 개척하는데 성공한다.
한부부가 찾아와 홍대장에게 극장 수위를 맡아달라고 한다. 얼마후 부부는 다른 제안을 한다. 대장님 이야기를 연극으로 올리겠다고 한다. 그래서 작성된 이야기가 홍범도 일지이다. <의병들>이라는 이름으로 연극으로 상영되었다.
홍범도 장군은 1943년 75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 했다.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의 유언 " 내가 죽고 우리나라가 해방된다면 꼭 나를 조국에 데려다 달라"
홍대장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75년동안 미루어 졌다.
2021년 8월 15일
홍범도 장군 유해는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게된다.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꼬꼬무 리뷰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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