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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그리고 교양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70회 줄거리 리뷰 꼬꼬무 조영래변호사

by 드라마 보는 망고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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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양 보는 망고예요. 

오늘 꼬꼬무는 '0원짜리 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담당했던 사건 중에 부천 성고문 사건을 재조명합니다. 

언론은 침묵했고 가해자인 경찰과 이를 수사하는 검찰은 한통속인 상황. ‘윗선’은 이미 성고문 가해 경찰을 기소유예로 처리하라 명령을 내렸다. 서슬 퍼런 5공 정권 앞에 용감히 맞선 스물두 살 권양과 ‘빵원짜리’ 변호사 조영래. 세상에서 가장 불리한 재판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70회 줄거리 리뷰 시작합니다.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69회 줄거리 리뷰 수상한 비밀 작전! 은폐됐던 그날의 진실 ‘C-123기 추락 사건’ 꼬꼬무 봉황새 1호 작전 (tistory.com)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69회 줄거리 리뷰 수상한 비밀 작전! 은폐됐던 그날의 진실 ‘C-123

안녕하세요~ 교양 보는 망고예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69회는 6.25와 베트남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군인들이 희생된 참사! 하지만 너무나 알려지지 않은 41년 전 그날의 진실이 낱낱

youngandyoung.tistory.com

 

출  연  진 :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
초대 손님 : 서경석, 치타, 김이나

 

1. 절대 이름을 묻지 말 것
2. 만남은 일주일에 2번 수요일과 일요일
3. 약속 시간에서 30분이 지나도 안 오면 기다리지 말고 갈 것

 

순애씨는 생판 모르는 남의 무덤 앞에서 만나 장시간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는 순애씨 일터에 대해 물어봤다.

 

순애씨는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에서 13살부터 여공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만남을 이어가던 어느날 연락이 끊긴 남자가 다시 연락이 와 자수하러 간다며 이제 못 볼 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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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7월 인천의 한 교도소 접견실에 22살 권인숙씨가 수의를 입고 앉아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남자는 조영래변호사이다.

괴롭겠지만 이야기를 들려주겠습니까?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 반대운동 주동자로 몰려 도피생활 중이던 조영래는 순애씨를 만날 당시 이름도 밝히지 못하고 만났어야 했다.

제가 당한 일을 폭로하고 싶어요.

 

인숙씨의 자취방으로 찾아온 형사들은 부천경찰서를 인숙 씨를 데리고 가 주민등록증과 이력서를 보여주면서 설명해 보라고 한다. 인숙 씨는 그동안 남의 신분으로 살았던 것이다.

 

인숙 씨는 운동권 학생으로 공장에 위장취업을 하기 위해 신분을 위조했던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인권운동이 활발했던 70~80년대에는 직접 노동 현장에 뛰어든 운동권 학생들이 많았다. 노동자를 위한 야학 운영 및 노조 설립을 주도하기로 했다.

 

업주와 정권은 이 학생들을 불온세력이라며 빨갱이로 취급했다. 

 

인숙씨가 체포되기 한 달 전에 인천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정권의 대대적 탄압이 기세를 올리고 있었고 주동자 검거하면 특진에 표창까지 내리는 상황이었다.

 

 

인숙씨가 갇혀있은지 3일째 되던 날 새벽 4시에 불려 나간 곳에는 경찰서장과 경찰들이 있었는데 경찰서장이 인숙 씨에게 이렇게 협조가 안돼서 되겠냐며 나가고 문경장이 인숙 씨에게 따라오라고 한다.

 

문경장이 인숙씨의 티셔츠와 속옷을 들추며 입에 담기도 힘든 성적 수치심을 느낄만한 말들을 내뱉었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성적 수치심을 이용한 것이다. 고춧가루물을 가져오라고 한 문경장의 고문에 인숙 씨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생각나는 이름 민수를 말한다.

 

민수라고 한 거짓말이 들통난 다음날 다시 불려간 인숙 씨에게 수사계장은 문경장에게 성고문을 지시한다. 수배자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느냐고 묻는 질문에 인숙 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진술을 할 때마다 강목으로 맞았다.

 

인숙씨 아버지의 직업을 물어보는 문경장은 뒤탈이 생길걸 우려해 떠보는 거였다. 이를 알아차린 인숙은 식당을 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인숙 씨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는데 아버지에게 불이익이 갈 것을 우려한 인숙 씨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하나의 벽을 넘어서] 권인숙 자필수기 中
그는 OO마저 벗겨 내렸다.
나는 반 벌거숭이 상태가 되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의자를 내 의자 앞으로 바싹 당겨 앉았다.
그리고 OO를 만지며 나의 몸에 자신의 몸을 비벼댔다.
"너 같은 거 여기서 죽어도 아무 일 없어 빨리 불어"
나는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차라리 그가 나를 죽여주는 것이 훨씬 깨끗하고 고마울 것 같았다.

 

힘이 없는 소시민들을 변호했던 조영래 변호사의 수임료는 0원이었다.

 

인숙 씨는 문 경장을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한다. 조 변호사를 포함 9명의 변호인단이 결성된다. 이건 경찰과의 싸움이자 5공 정권과의 싸움이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반복적으로 진술하는 것도 힘든 권인숙 씨에게 검찰은 가해자와의 대질신문을 진행한다. 

 

6월 7일 1차례 조사한 게 전부라는 문경장. 경찰서장부터 형사들까지 모두 입을 맞춘 듯 동일한 진술을 한다. 문경장도 검찰에 인숙 씨를 명예훼손과 무고죄로 고소한다.

 

곳곳에서 경찰의 거짓이 드러나는 증언들이 쏟아진다.

- 6일은 비상소집이 있어 경찰서장까지 출근을 했다는 증언

- 구내 다방 종업원의 진술 "6일이요? 제가 커피 배달을 갔었는데"

- 유치장 수감자 진술 "7일 저녁이요? 인숙씨 그날 밤늦게까지 유치장에 안 들어왔어요"

 

검찰의 추궁에 문경장 친구들은 6일 날 유원지 놀러 갔다는 건 문 경장의 부탁으로 알리바이를 조작했다고 자백한다.

권양의 고소사실 중 문경장의 성적모욕을 가했다는 부분은 인정할 수 없으나
폭언, 폭행을 했다는 부분은 일부 사실이 인정된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티셔츠를 입은 가슴부위를 3~4 차례 쥐어박아 폭행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문경장이 권양에게 폭언, 폭행한 것은 조사에 집착한 나머지 우발적으로 저지른 과오로써
문경장은 이로 인해 10년 이상 경찰에 봉직해 온 경력을 살펴 기소유예* 처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기소유예
죄는 있지만 가벼워서 재판에 안 넘긴다. 즉, 법적처벌을 안 한다.

 

공안당국의 분석

권양은 급좌경노선을 신봉하는
행동대원으로서 목적관철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도 서슴지 않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혁명을 위해서는 성(性)도 도구화
즉, 좌경의식화된 학생들은 성(性)을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석방구명을 위해서
사실이 아닌 고문, 폭행, 추행을 날조 주장하도록
철저히 교육받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전에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린다.

사건을 덮자는 의견이 다수로 나온다. 전두환 대통령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가고 기소와 기소유예 중 기소유예로 하라는 대통령의 결정으로 수사 결과가 발표된다.

 

조영래 변호사는 사건의 진상을 우리 손으로 직접 알리기로 한다.

 

조영래 변호사 직접 작성한 변호인단의 고발장을 10만 부를 인쇄해서 전국적으로 배포했다. 

 

고발장은 복사에 복사를 거쳐 전국적으로 퍼졌다. 국민들은 진실을 요구했고 경찰은 회피하기 급급했다. 

 

최후 변론을 하는 조영래 변호사.

변호인들은 먼저 이 법정의 피고인석에 서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권양'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
온 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알고 있는 이름 없는 유명인사
얼굴 없는 우상이 되어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국가가 사회가 우리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눈물 없이는 상기할 수 없는 '권양의 투쟁'
어떤 오욕과 탄압으로도 끝내 꺾을 수 없었던
그 불굴의 용기와 진실을 위한
눈물겨운 헌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재판은 거꾸로 된 재판입니다.
여기에 묶여 서서 재판받아야 할 것은
이 연약하고 순결무구한 처녀가 아니라
바로 이 처녀에게 인간의 탈을 쓰고서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추악한 만행을 저지른 문경장
문경장의 범행을 교사, 방조하였던 모든 사람들
문경장을 비호하고
그 범행을 은폐하려고 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서서 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신분증을 위조한 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는다.

 

조변호사는 검찰의 기소유예를 잘못되었다며 가해자는 법정에 세워달라고 법원에 요청한다. 재정신청서에 이름을 올린 변호사가 166명이었다. 단단하던 전두환 독재 정권도 무너지기 시작한다.

 

1988년 4월 9일

사건 발생 1년 10개월 만에 인숙 씨와 변호인단의 요청이 받아들여진다.

한 달 후 성고문 사건의 첫 공판이 열린다. 

 

문경장은 자신의 모든 죄를 부인한다. 

 

당시 인숙 씨는 진실을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기뻤다고 한다.

 

조영래 변호사는 성고문 사실을 알리려던 그 순간부터 재판을 받은 그날까지 항상 인숙의 곁을 지켰다. 

 

 

조영래 변호사가 순애씨를 만났던 이유는 바로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려 했던 전태일 열사 때문이었다.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던 조영래 변호사는 신문에서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빈소로 달려갔다고 한다. 

 

전태일 열사는 생전에 근로기준법 책을 들고 씨름하다가 "대학생 친구가 한 명만 있으면 원이 없겠어요"라는 말을 한다. 조영래 변호사는 늦었지만 그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한다.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의 가족들을 마나고 평화시장의 여공 순애 씨를 만나며 글을 썼다. 그렇게 3년 만에 원고를 완성한다.

 

책이 완성된 1976년은 군부독재 시대로 책을 출간하는 건 꿈도 못 꾸는 시대였다. 그래서 전태일 평전은 일본에서 출간된다. 저자의 이름도 가명으로 출간된다.

 

그가 떠나고 한 달 후에 조영래 변호사의 이름으로 전태일 평전이 출간된다.

 

조영래 변호사가 사법연수원 검사시보 시절에 쓴 글
내가 하려고 하는 제일보는 핀의자 또는 참고인,
가족들에게 친절히 대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친절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도록
어떤 경우에도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진 자의 우월함을 나타내거나
상대방을 위축시키거나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다른 것은 다 못하더라도
이것만 해낼 수 있다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겠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면
인간성에 거는 우리의 모든 신뢰와 희망은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날의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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