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양 보는 망고예요. 오늘의 꼬꼬무 주제는 야구계의 전설 최동원 선수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희생해서 점수를 내는 유일한 경기가 야구라고 합니다. 최동원 선수의 야구에 대한 사랑이야기 시작할게요.
출 연 :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
초대손님 : 신소율, 이용대,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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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가을 동대문 서울운동장 - 전국 우수 고교 초청 야구대회 2만 6천 명의 관중
그들이 지켜보는 핫한 선수는 바로 경남고등학교 2학년 투수 "최동원 선수"
3일 연속 등판 - #노히트 노런 #완봉 #완투
완봉 : 투수가 상대 팀에게 득점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완투 (투수가 9회까지 혼자 공을 던짐)
노히트 노런 : 무안타, 무실점으로 승리
최동원 선수는 대한민국 최초 신체(어깨) 보험에 가입한다. 1977년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국가대표로 발탁된다. 한국 야구 사상 첫 세계대회 우승을 하게 된다.
최동원의 주무기는?
최동원 선수는 구속 150~152km/h를 던졌다. 마귀의 공을 던지는 최동원 선수의 커브를 당시 선수들은 하늘에게 떨어지는 느낌이라 폭포수 커브라고 불렀다.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 담당이 최동원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찾아온다. - 토론토 블루 제이스
최동원은 메이저 리그에 못 갔다. 그 이유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군부 장악 →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및 대통령 자리에 오름으로 민심을 잡지 못한 정권은 3S 정책을 편다.
Screen
Sex - 1980년대 저예산 에로영화의 홍수, 야간 통행금지 폐지(퇴폐향락 산업의 성행)
Sports
그렇게 당시 프로야구 6개 구단이 만들어진다. 전두환 정부는 스타 선수가 필요한 상황에서 최동원 선수는 메이저리그에 못 가고 부산이 연고인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다.
대망의 1984년
최동원 선수가 돌아가고 싶다고 한 바로 그해!
1984년 100경기 중에 52경기에 등판했다. 그해 가을 롯데 자이언츠는 한국시리즈에 올라가게 된다. 상대는 삼성 라이언즈다. 객관적인 전력상 삼성 라이언즈는 강한 팀이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한국시리즈에서 7전 4선 승제 중 1승이 목표였다.
롯데 자이언츠의 계획은? 최동원이 1차전 등판하고 3차전 등판하고 1승을 한다면 5차전에 등판하는 계획이었다. 그다음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질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1차전 결과는 4:0 롯데 자이언츠 승리! (한국시리즈 최초의 완봉승) - 최동원 선발
2차전 결과는 삼성 라이언즈 승리!
3차전 결과는 3:2 롯데 자이언츠 승리! (9회까지 완투 - 삼진 12개) - 최동원 선발
4차전 결과는 7:0 삼성 라이언즈 승리!
5차전 결과는 3:2 삼성 라이언즈 승리! - 최동원 선발
6차전 결과는 6:1 롯데 자이언츠 승리!
임호균 선수가 선발로 잘 던지고 타자들의 선전으로 4회까지 3:1로 앞서갔다. 하지만 임호균 선수의 손끝 부상으로 던질 수 없게 되자 최동원 선수는 5회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오른다.
7차전에 선발투수 최동원 선수는 5번째 출전에 3일 연속 등판하게 되는 상황에서 서울 하늘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7차전은 하루 연기가 된다.
다음날 운명의 7차전
2회부터 3점 내준 롯데 자이언츠는 6회에 홈런까지 내준다. 4:0으로 뒤진 상황...
'니 더할 수 있겠냐'며 말리는 감독에 최동원은
한 회만 더해보겠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타자들의 선전으로 3:4까지 따라붙는다. 최동원이 다시 마운드에 오른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최동원 선수의 공이 다시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최동원은 7회 말을 무실점으로 막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8회 초 롯데 공격 - 1 아웃 1,3루 상황 타자는 유두열 선수 3점짜리 홈런! 점수는 6:4
9회 말 삼성 마지막 공격 - 2 아웃 주자는 3루 스트라이크 아웃! 롯데 자이언츠 승리
27살 최동원은 팀을 우승으로 이끌다.
1988년 9월 서울 올림픽 개막 4일 전
최동원은 대전의 한 호텔로 향한다. 140명이 넘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모인다. 최동원은 선수들 복지를 위해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의회를 만들기로 한다. 비밀 모임의 정체는 바로 ' 프로야구 선수회 창립총회 ' 였다.
선수회의 목적은 연봉 하한선을 올리고 최소 생계를 위해 연금제도를 만들고자 했다.
구단들의 반응은...
- 선수회 대의원 총회에 참가한 선수와는 재계약하지 않는다.
- 회비를 납부한 선수와도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
- 선수회와 관련해 타 구단에서 재계약하지 않은 선수를 받아들인 구단과는 경기를 갖지 않는다.
최동원 선수는 예정대로 일정을 강행한다. 구단은 없던 일정을 만들고 선수들에게 각서까지 받아낸다. 결국 선수회는 해체되었다.
새벽에 걸려온 신문 기자는 묻는다. "삼성으로 이적한다는 얘기가 맞습니까?" 구단으로 찾아간 최동원 선수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삼성의 김시진 선수와 맞트레이드된다는 것이다. 최동원 선수는 사실상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것이다.
그 이유는? 팀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는 구단과 달리 다들 보복성 트레이드라고 생각했다.
최동원 선수는 결국 고향 팀을 떠나게 된다. 이제는 삼성의 최동원이 되었다. 최동원의 강속구는 힘을 잃었고 폭포수 커브는 예리함이 사라졌다.
1990년 가을 최동원 선수는 은퇴를 결정한다. 그의 나이 32살이었다. 은퇴식 없는 초라한 마지막이었다.
2005년 최동원 선수는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을 가르쳤다. 최동원의 코칭을 받은 선수는 류현진 선수다. 한화 2군에서 선수를 가르친 최동원 선수.
하지만 오래 가르치지는 못했다. 훈련 중에 갑자기 사라지거나 선수들 이름을 잊어버리고 멍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알고 보니 대장암으로 수술까지 받고 항암 치료 중이었다.
3년 만에 그라운드에 나타난 최동원!
경남고 VS 군산상고
레전드 리매치
2011년 9월 14일 최동원 선수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나이 53세.
세상을 떠나기 2달 전 기자와 인터뷰에서...
" 박기자 내가 선수 시절에 그라운드에서 뭘 쫓아다녔는지 압니까? "
" 글쎄요 공 아닙니까? "
" 내가 쫓아다녔던 건 공이 아니에요. 나도 그런 줄 알았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까
우리가 쫓은 건 하얀 야구공이 아니라 별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별은 하늘에만 떠 있다고 별이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길을 밝혀주고 꿈이 되어 줘야 그게 진짜 별이에요.
그래서 생각한 건데, 이제 야구계를 위해 나도 뭔가를 하려고 해요. 이젠 그냥 최동원 이 '최동원'이란 이름 석 자가 빛나는 별이 아니라 젊었을 때 나처럼 별을 쫓는 사람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그런 별이 되고 싶어요. "
최동원 선수가 만들고 싶었던 선수회는 2001년 후배 선수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날'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51회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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