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큐 보는 망고예요.
겉으로 번창한 것처럼 보였던 회사 오대양.
사장 박순자와 31명의 사람이 숨진 상태로 발견되면서
그 회사에 관해 의문이 제기되고, 사건의
원인을 캐기 위한 수사로 이어진다.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 4회 줄거리 리뷰를 시작합니다.
앵커) 우리는 무척 어수선한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8월을 마무리 짓는
이 마지막 주말에 엄청난 비극이 우리를 또 경악시키고 있습니다.
기자) 공장 구내식당에 천장이 뜯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천장을 뜯고
위로 올라가 보니까 시체 서른 두 구가 이리저리 엉켜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남자 4명 여자 28명 총 32명 집단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을 하게 됩니다.
집단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 집단 타살이라고 합니다.
앵커) 교주 박순자 여인을 따라 죽음의 의식을 치르고 최후를 맞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모두 숨졌으며 주요 증거물들이 없어졌거나
변형돼 수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동섭) 구월을 받으면은 ' 아, 나는 언제 죽어도 천국 간다' 그 사람들은 못 할 짓이
없다고 합니다.
아이) 이곳은 축복받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이곳은 평화 깃든 땅 바로 오대양
삼재) 1960년도에 경찰에 들어가서 64년부터 현장 감식을 맡아서 했다고 합니다.
8월 29일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합니다.
'용인에서 사건이 터졌다' 정확한 얘기는 못 듣고 '많이 죽었다'
'그리고 이게 천장이다'
이미 가니까 천장이 구멍이 뚫어 놓고 있었는데, 여기가 사건 사고 현장이라고 합니다.
깜깜해서 플래시를 켜고 천장 위를 쳐다보니, 시체가 보였다고 합니다.
현장에 시체들은 손이랑 발이 묶이고 입도 틀어막고, 코도 들어 막았다고 합니다.
박순자 얼굴에는 표피 박탈이 있는데 반항흔(손톱자국)이 있다고 합니다.
31명 모두 내가 죽는데도 발버둥 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이러면 이게 이상한 게 아니냐
하면서 의문점이 생겼다고 합니다.
입에는 탈지면으로 틀어막는 건. 왜 틀어막았을까? 혹시 그 솜 안에 약물이 묻은 게 아니겠느냐라고
추측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 독극물이 아니겠느냐' 솜을 수거해서 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 의뢰를 했다고 합니다.
1987년 8월 30일 새벽 3시경 국과수 당직실에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용인경찰서에서 변사 사건이 있는데 여러 사람이 죽었는데, 강력 사건이
얼른 발리 들어오시라고 전해 듣게 됩니다.
사고 현장에선 많은 시체가 쭉 이렇게 열 지어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1987년 8월 30일 10 부검 시작.
부검을 시작을 하니 대부분이 다 교살체로 나왔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교사(타인의 힘에 의해 끈으로 목이 졸려 사망)라고 합니다.
남성 한 명은 의사(스스로 목을 메 사망)를 했다고 합니다.
독극물 반응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앵커) 이번 사건이 과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가 타살인가.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왜 박 여인을 따라서 함께 숨졌는가
오대양 사건의 수수께끼는 좀처럼 시원하게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정재) 87년 당시 대전일보 사회부 기자로 강력사건에 대한 취재를 전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새벽에 마지막 간 곳이 대전서부경찰서 보호실이었다고 합니다.
거기 들어가 보니 한 5~6명 정도의 청년들이 앉아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생김새는 멀쩡 했는데 눈이 이상했다고 합니다. 눈을 보니 전혀 자기 의지가 없는
그런 눈이었다고 합니다. 경찰서에 왔으면 변명해야 되고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을 하든가 아니면 죄를 지었다고 반성을 해야 되는데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다고 합니다. 조사를 끝나고 , 형사분에게 '저분들 왜 왔느냐' 물어보니
채권자들을 집단 폭행했다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충남 부여군 양화면 입포리에 사는
주유소를 경영하는 이상배 씨 딸들이 오대양에 관련되게 되고
이 딸들은 아버지로부터 약 5억 원의 돈을 가져다가 오대양에 바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7남매는 모두 부모 몰래 오대양에 입사해 먹고 자고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어 우리 남매들이 집으로부터 끌어들인 돈이
무려 5억 원에 달았다고 합니다.
7남매 아버지는 이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 박순자를 찾아갔고, 그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다가
결국은 채권 포기 각서를 썼을 뿐만 아니라, 집단 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집단 폭행 이후 7남매 아버지는 경찰에 고소를 하게 되면서
이 오대양 사건이 촉발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하에 형사실이 있는데, 들어가 보니까 깡마른 여인이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이 묻는 말에 거의 대답을 안 했다고 합니다. 눈빛은 날카로웠다고 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송사
카메라가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카메라가 들어오니 박순자를 찍으니 박순자는 절도를 했다고 합니다.
박순자 옆에 아들(장남)이 졸도를 한 박순자를 업고 어디론가 업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곤 박순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박순자 신도들을 과 함께 사라졌다고 합니다.
앵커) 지난 24일 경찰 조사 도중에 졸도해서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던 대표 박순자 여인과
아들인 전무이사 이영호 씨 지구언, 육아원생 등 150여 명이 행방을 감추고
채권자들이 속출하면서 더욱 확대됐습니다.
영석) 오대양 공장을 취재하러 갔을 때 공예품을 제작하는 업체였다고 합니다.
전국 공예품 대회 경진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역 내에서 모범 업체로 뽑혀서
새마을 우수 중소기업 업체로 지정이 된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당히 잘 나가는 여성 사업가였다고 합니다. 또 불우한 이웃도 많이 돕고 자선 사업가였다고 합니다.
한편 이 회사는 직원들을 위한 복리 증진을 한다며 특히 가족 공동체 같은 생활을 한다 해서 실제
어린아이들도 공동체 생활 하는 것을 취재를 했고 인터뷰도 했다고 합니다.
박순자의 남편은 건설 국장을 맡고 있던 이기정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박순자를 믿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박순자는 처음에 사채를 모을 때에는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었던 높은 이자를 대가로 사채를 빌려줬다고 합니다.
100만 원 빌려주면 이자는 40만 원이 나온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부인이 사기를 치겠냐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자 한 푼을 안 받고 재투자, 재투자를 했었다고 피해자들은 나와서 말을 합니다.
앵커) 오대양 직원들에게 성령의 뜻을 따르는 길은 돈을 많이 빌려오는 것이라며 철저한 세뇌 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뇌된 직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려다
박여인에게 바쳤습니다.
앵커) 단순 폭행 사건에서 거액 사기 사건으로 보고 달아 난 회사대표 박 여인등의
소재 파악 수사를 펴 왔습니다.
박순자의 마지막 모습
1987년 8월 24일 경찰 조사 중 졸도
1987년 8월 25일 신도들과 잠적
1987년 8월 25일 잠적 당일 대전
그날 엄청 서두르는 걸 봤다고 하는 오대양 직원의 진술.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러고 자기네들끼리 엄청 좋아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채권자 - 돈을 빌려주면 우리를 도와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대양 박순자 사장을 이제 좋은 일 하는 데 도와주는 거고, 이자는 하루도 안 틀리게 준다
돈을 줬다고 말을 합니다.
그때 당시 8.500만 원 정도 넣었는데 하나도 못 받았다고 합니다.
채권자 - 취직을 하게 해 주고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 만나러 갔을 때는 밝았는데 취직하고 나서는 좀 달라졌다고 합니다.
밥이니, 숙소니 다 거기에서 제공해 주고 전부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말 한마디 잘 못하게 하고 가족들이 다 들어가 살아도 만남도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나갈 때는 허락을 받고 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회개하라면서 폭행을 했다고 합니다.
박순자 본인이 '신의 어떤 게시를 받은 존재다' 강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본인이 신의 계시를 받았고 조만간 말세가 온다는 그런 주장을 폈다고 합니다.
앵커) 박 여인과 직원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형사들을 보냈으나 이들의 자취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오후 보육원 어린이들 49명을 경기도 용인에서 발견했습니다.
경찰은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삼인동 농장에 숨어 있던 49명을 데려와
귀가 조치 시키거나 수용 시설에 보호하면서 수사를 펴 왔으나 모두가 입을 열지 않아
애를 태웠습니다.
한통의 익명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박순자 일행이 경기도 용인의 삼인동 농장이라는 곳으로 도망을 갔다고 제보를 받게 됩니다.
산 아래에 계단식으로 된 공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공장이 고요했다고 합니다.
맨 위까지 가서 보니까 봉고차 하나가 서 있는 걸 발견을 하게 됩니다.
운전석 쪽을 보니까 조그마한 통행권이 있었고 대전에서 용인으로 온 차량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자) 박 여인이 봉고차로 대전에서 사람들을 싣고 왔다는데 그 이후에 행동을 설명을 해 주시죠
영희) 봉고차로 왔을 때 하루는 바닥에서 같이 지내고 이튿날 다락으로 올라갔다.
1987년 8월 26일 박순자와 신도들 천장 위로 올라감
기자) 식사는 어떤 식으로 제공을 했는가?
영희) 식사는 주먹밥을 해서 비닐에 올려서 줬다고 합니다. 밥을 넣어서 하루에 한 번씩
경찰 수사에 동의를 못한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조금 무리한 점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추가로 더 수사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이 수사가 100% 맞았다고 볼 수 없고, 이경수 혼자서 다 벌인 일이고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앵커) 국회 5공 비리 조사 특위의 김현 위원장은 오대양 사건이 집단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면서
진장 조사를 위해 보고를 듣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의혹 1 일주혼
이경수는 용인 남사면 공장장이라고 합니다. 법의학 책을 보면 전경부에서부터 후경부에 일주한 것은
무조건 교사라고 본다고 합니다. 교살당한 31명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일주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나온 이경수에게서도 동일한 일주흔 발견
이경수에게서 일주흔이 발견된 이유
1. 옭매듭으로 스스로 목을 조인 이경수.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일주혼 발생
2. 시간이 흐르며 전경부 (앞 목)로 끈이 파고들고, 반대로 후경부에는 공간이 생겨
의혹 2 공장장 이경수 혼자 31명 살해?
만약에 혼자서 그랬다면 손바닥에 피하출혈이라는 게 일어나야 되는데 전혀 그런 자국이 없었다고 합니다.
의혹 3 맞아 죽은 교주 박순자?
사망 추정 시각은 약 10시간에 걸쳐서 판단이 되는데 그중 박순자가 최초로 사망을 한 것으로
추정을 했다고 합니다.
추정시각 때에 당시 용인 공장으로 봉고 차량이 두 차례 정도 공장으로 들어왔다 나가고 공장으로 들어왔다 나가고 했던
증언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외부에서 사건을 터뜨리고 공장으로 옮겼을 가능성은 없는가?
삼재 ) 현장에 올라가서 보니까 찢어진 쪽지를 발견을 했다고 합니다.
A4 용지 반 장 짜리 주어와서 붙었다고 합니다.
쪽지의 내용
절대 입 닫아라 이미 의식 없으시다 네 시간 전부터 다섯 명 정도 갔다. 너만이 깨물어라
처음 계획하고 온 거다. 성령인 도로 너도 버텨라 오늘 중으로 다 갈 것 같다.
현장 목격자 ) 구타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울고 그럴 때는 '서로 반성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기자) 오대양에 모여 있는 300여 명의 채권단은 오늘 오후 경찰이 박 여인의 배후와 은닉 재산을
정확하게 밝혀 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습니다.
사건이 일어났던 이기정 씨가 새벽 1시부터 아침 8시까지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을 하고 이 씨의 사건 관련 여부를 집중 수사하고 있습니다.
충청남도 건설 국장이었다고 합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남사면에서 죽음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 많은 돈을 받아들이고 이자 내고 하려면 자식들이 3명이 한 곳에서 차장이니 뭐니 해 가면서 직책이 있었는데
아버지인 이기정이 모를 수 없을 거라 주장을 합니다.
정재 - 이기정은 이 사건과 무관하다. 자식을 잃은 피해자다라고 진술을 했다고 합니다.
기자) 오대양 총무 33살 노순호를 검가하기 위해서 연고지인 전라북도 임실로 수사대를
급파했습니다.
이 사건의 키는 노순호 총무과장이 일부 쥐고 있지 않은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행방불명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노순호가 살아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1년 반 뒤에 범인들을 자수를 했다고 합니다.
기자) 검찰은 오대양 설립 이후 끌어모은 부채가 108억 원에 달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총무과장 노순호가 이탈 움직음을 보이자 집단 폭행해 암매장하는 사태에까지
르렀다고 밝혔습니다.
1년 이상 조직적이고 치밀한 자수 연습을 해 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구원파와 오대양은 관계없다고 진술할 것을 강요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영석- '삼우도 지금 고통받고 있답니다'라는 메모지는 검찰 수사팀에게도
참고 자료로 제출이 돼서 증거 자료로 채택되었다고 합니다.
지도자 입장에서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해서 시작한 것이 사업이라고 합니다.
헌금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부도 직전에 있는 삼우트레이딩 회사를 인수를 해가지고
광주, 대구, 부산, 대전, 이런 주요 도시에 목돈을 모금을 해 가지고 유벙헌에게 갖다 바치는
직분자를 임명을 했다고 합니다.
박순자는 이제 대전 지역을 담당했던 사채 모금 책임자였는데 유병언에게 이용당했던
하수인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오대양은 종교로 과장해 사채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던 회사였다고 합니다.
자금 비서 송재화 오대양과 삼우트레이딩을 연결하는 연결 고리로서
유병언의 자금 모집책 역할을 했던 걸로 보인다고 합니다.
유병언이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간다든가 그런 일은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걸 전부 송재화한테 책임을 떠넘겼다고 합니다.
박순자가 10억, 20억 자금을 마련을 하면 송재화한테 송금을 했다고 합니다.
그럼 송재화는 유병언한테 보낸 거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유벙언은 그 돈을 가지고 회사 운영에 쓰이게 되고
유병언과 박순자의 관계는
유병언 집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지, 아니면 타살인지
여기에 관여를 했는가 뚜렷한 증거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박순자가 4억 6천만 원을 모은 모금이 유병언 회사로 유입된 사실은
수사 과정에서 인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박순자 사망으로 인해 유병언은 오대양과 관련된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다만, 송채화 등 다른 모집책들이 거두어들인 돈에 대한 상습 사기 혐의가 적용돼
최종적으로 징역 4년을 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오대양 사건 글을 마칩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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