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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그리고 교양

벌거벗은세계사 129회 줄거리 리뷰 '끊을 수 없는 갈등! 이스라엘 vs 이슬람 근본주의'

by 드라마 보는 망고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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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23년 중동을 다시 생지옥으로 만든 이스라엘 vs 하마스 전쟁! 이번 전쟁으로 인해 다시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치게 된 이슬람 무장 조직 하마스. 하마스의 근본주의는 왜 이스라엘 타도를 외치는가? 전쟁은 왜 2023년 10월 7일에 다시 일어나야 했을까? 벌거벗은 세계사 129회 줄거리 리뷰 시작합니다.

 

 

끊을 수 없는 갈등! 이스라엘 vs 이슬람 근본주의

 

2023년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규모 공격을 가했다. 하마스 대원들은 낙하산을 타고 이스라엘에 침투했다. 그리고 음악축제에 총기를 들고 침입해 단 하루에 민간인 약 1,200명을 죽였고 이스라엘인들 240여 명을 납치했다. 

전쟁을 선포한 이스라엘

 

하마스
이스라엘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전역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 무장단체

 

|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의 탄생지 《이집트》

하마스의 시작이자 사상적 기반은 이슬람 근본주의이다.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원리주의', '이슬람주의'라고도 하며 전통과 문자적 교리 준수를 통해 이슬람 공동체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는 종교적 원리주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태동한 곳이 바로 이집트이다.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의 시작은 무슬림 형제단이다.

 

이슬람 근본주의 특징

① 샤리아가 지배하는 국가 건설

② 서구 세력과 세속화 배척

 

 

 

무슬림 형제단의 초기 목표는 이슬람을 제대로 지켜서 다시 이슬람의 영광을 찾고 영국의 보호령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7명으로 시작된 조직은 1936년 약 800명으로 증가하고 1938년 약 20만 명까지 증가한다.

 

Q. 무슬림 형제단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건, 이것 때문이었는데요, 이슬람의 가치를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한 이것은 무엇일까요? 학교를 통해 이슬람이 얼마나 훌륭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가르치기 시작

 

| 무슬림 형제단 탄압이 불러온 나비효과

무슬림 형제단의 인기와 영햐역이 치솟자 당시 이집트 왕 파루크 1세(재위 1936년~1952년)는 무슬림 형제단이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얘기에 가만히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대영 투쟁으로 무슬림 형제단 단원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1948년 3월 무기징역 선고를 내린 판사를 암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두고볼 수 없었던 이집트 왕정은 1948년 12월 무슬림 형제단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탄압한다. 그러다 당시 이집트 총리 누끄라시 파샤가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총리를 죽인 범인은 무슬림 형제단 단원이었다.

 

무슬림 형제단의 창시자이자 수장 하산 알 반나가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의 배후에 이집트 왕정이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면서 무슬림 형제단은 분노한다.

 

| 중동을 뒤흔든 갈등의 불씨, 이스라엘 건국!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한다. 영국은 아랍지도자들과 시온주의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분양 사기를 벌인다. 

 

시온주의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니까 당시 중동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전쟁을 하게 된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못마땅했던 지도자 샤리프 후세인은 영국에 오스만 제국을 이기는 데 도움을 줄 테니 아랍 지역에 아랍 국가를 세우게 해달라고 제안한다. 

 

샤리프 후세인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으로 아람 민족 국가 독립을 하고자 한 당시 아랍의 지도자

 

영국은 아랍의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하며 팔레스타인에 아랍인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한다. 전쟁이 길어지자 영국은 외교장관 아서 밸푸어를 통해 시온주의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 대가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거처를 마련해 주겠다는 것이다.

 

영국은 1917년 12월 팔레스타인을 점령한다. 당시 팔레스타인 거주 인구 비율은 아랍인 96%, 유대인 4%였다. 영국의 묵인 아래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이 대규모로 이주해 온다. 영국에 배신을 당한 아랍인들은 항쟁을 벌인다.

 

팔레스타인 항쟁 (1936년 4월 19일 ~ 1939년 8월 26일)
영국 위임통치령에 대항하여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일으킨 민족주의 봉기

 

결국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불씨를 붙인 채 수습하지 못하고 손을 떼 버리고 새로 생긴 UN에 이 문제를 넘긴다. 1947년 11월 29일 UN 총회에 상정이 된다. 투표 결과는 아랍 국가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 안이 통과된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의 56%를 자치하게 된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은 이를 근거로 독립 선언을 한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던 아랍 국가 사람들은 이스라엘 건국 다음 날인 1948년 5월 15일 7개의 국가가 이스라엘에 대항한다. 

 

1차 중동전쟁 (1948년 5월 15일 ~ 1949년 3월 10일)
이스라엘 건국에 반발한 아랍 세력과 이스라엘의 전쟁

 

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 땅의 77%를 차지하게 한다. 이후로도 1956년 2차 중동전쟁과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거치며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에 승리한다.

 

이집트의 왕은 시리아와 함께 빼앗긴 시나이 반도를 되찾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4차 중동전쟁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으로 이스라엘에 빼앗긴 시나이 반도와 골란고원을 되찾기 위해 벌인 전쟁

 

이집트는 소련의 지원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이스라엘을 제압한다. 이집트가 전쟁에서 승리할 입장에 놓이자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면서 반격을 시작한다. 승기를 잡은 이스라엘을 보고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국가에는 석유를 팔지 않겠다는 석유 금수 조치를 내린다.

 

결국 전세계를 석유 파동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전쟁을 멈춘다. 

 

| 중동 평화의 시작? 캠프 데이비드 협정

미국 카터 대통령 중재자로 나서면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평화 협정을 맺게 된다. 그 협정이 바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다.

 

캠프 데이비드 협정 결과
시나이반도에 주둔해 있는 이스라엘군의 철수 후 이집트에 반환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정 후 공식 석상에 선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암살을 당한다. 이스라엘과 협상에서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외면한 채 이집트의 이익만 챙겼다고 비판받으며 아랍세계의 배반자로 낙인찍혔다.

 

암살 범인은 이슬람 지하드 소속의 육군 장교 칼리드 이슬람불리였다. 

 

| 하마스 성장의 원동력! 반이스라엘 저항 운동

1987년 일어난 대규모 민중 봉기 인티파다는 무려 6년이나 이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1987년 12월 8일에 벌어진 자동차 사고였다. 이날 이스라엘에서 가자지구로 넘어가는 검문소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타고 있는 차를 들이받은 이스라엘 군용 차량으로 팔레스타인 4명이 사망한다. 

 

팔레스타인은 사망한 사람을 위로하는 집회를 했고 이 집회는 곧 시위로 발전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와 서인지구의 전기와 통신선을 끊어버리고 시위를 주도한 인물의 집을 찾아내 철거했다.

 

이때 하마스는 직접 1차 인티파다에 참여한다.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PLO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건설하기 위해 1964년 아랍연맹의 후원으로 공식 출범한 조직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PLO 중 가장 큰 정파가 바로 파타인데 이 조직의 대표가 아라파트로 1959년 파타를 결성하고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하마스는 PLO를 비난했는데 그 이유는 PLO의 성격이 결성했을 당시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PLO 초기에는 이스라엘 타도와 팔레스타인 해방을 목표로 강경 투쟁을 했다. 1차 인티파다 기간 동안 PLO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건 힘들다고 보고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하마는 PLO의 생각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강경파 무장 조직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 총리와 PLO 의장이 한자리에 모이는데 1993년 9월 13일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다. 

오슬로 협정
이스라엘은 PLO를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고 PLO도 이스라엘의 존재 근거를 인정하여 공존의 가능성을 협의

 

① 1994년까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립

② 1999년까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 철수

이밖에도 이스라엘과 PLO 간의 경제 협력과 지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슬로 협정을 통해 PLO는 자치 정부를 구성한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며 자치 정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 이스라엘에 대항한 하마스의 무장 투쟁 - 자살 폭탄 테러

수차례 자살 폭탄 테러를 한 하마스는 이스라엘 사람 60여 명을 죽였다. 2000년까지 이어진 자살 폭탄 테러로 미국과 영국 등의 서방 국가들은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규정했다. 

 

| 이스라엘에 대항한 하마스의 무장 투쟁 - 기습 폭격

2004년부터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로켓을 쏘기 시작한다. 그에 대항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군용기를 보내 폭격했다. 그러다 하마스의 지도자 아흐메드 야신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흐메드 야신은 이스라엘군 헬기가 쏜 미사일에 표적 살해 당한다. 야신은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보복을 시사한다.

 

Q. 2005년 하마스는 이것으로 변신해, 이스라엘을 더욱 긴장시키는데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하마스는 무장 조직을 넘어서 정치 정당이 된다.

 

| 무장조직 하마스 정치 정당으로 변신하다!

2006년 1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하마스는 132석 중 무려 74석을 차지한다. PLO 파타에 실망한 국민들이 하마스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많은 국제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승리를 위협으로 느낀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주도하는 자치 정부를 적대 세력으로 규정한다. 하마스와 관련된 모든 관계를 단절시킨다. 

 

선거에 승리한 하마스는 파타와 내전을 벌인다. 

파타-하마스 분쟁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한 하마스는 2007년 6월 10일 ~ 15일 파타와 내전

 

 

 

내전에서 승리한 하마스는 파타 세력을 가자지구에서 추출한다. 그 결과 서안지구는 파타가 집권하고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집권한다.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에 대해 이스라엘은 2006년 약 2억 2,000만 달러(약 2,900억 원)를 들여서 가자지구에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건설한다. 장벽의 높이는 무려 7미터에 달했다.

 

이스라엘은 1994년부터 가자지구 이동을 통제하는 60km 울타리 장벽을 세웠었다. 가자지구의 면접은 세종시(인구 약 38만 명)와 비슷하지만 가자지구 인구는 약 230만 명이 살고 있다. 

 

Q. 2018년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에 대응한다면서 이것 장벽을 추가로 설치했는데요, 어떤 장벽일까요? 하마스 특수대원들이 수심이 얕은 곳으로 침입해서 바다 장벽을 추가로 설치한 것

 

이스라엘은 2021년 12월 7일 약 1조 3천억 원을 들여 가자지구 스마트 장벽을 완공한다. 스마트 장벽의 규모는 높이 6m, 길이 65km나 되었다. 스마트 장벽에는 수많은 감시 카메라와 감지 센서 등 최첨단 장비를 갖추었다.

 

2023년 10월 7일 오전 6시 30분, 이스라엘

예상치 못하게 수천 발의 로켓이 이스라엘로 향했다. 이 공격으로 이스라엘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은 선제 로켓 공격 보복성 공습처럼 원거리 타격전이 주요 전술이었다.

 

이번 전쟁은 하마스가 약 천여 명의 무장병력을 이끌고 이스라엘 영토를 침범한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범한 것이다.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 장벽

하마스는 드론 폭탄으로 감시탑을 파괴하고 스마트 장벽을 통과한다. 철벽으로 자부하던 스마트 장벽이 하마스의 습격으로 맥없이 파괴되었다. 

 

2023년 10월 7일 오전 7시 이스라엘 남부 음악축제

하마스 대원들은 낙하산을 타고 이스라엘에 침투한다. 그들은 오토바이, 트럭, 패러글라이더를 동원해 순식간에 축제 현장을 포위했다. 탈출을 시도하면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했고 그 결과 행사장에는 시신 260여 구가 발견되었다. 이뿐 아니라 하마스는 민간인 약 천여 명을 사망케 했다. 

 

하마스가 민간인을 공격하는 10시간 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Q. 하마스는 기습공격을 위해 2005년부터 이것을 만들었는데요, 하마스의 가장 큰 비밀무기는 무엇일까요? 하마스가 만든 땅굴 - 가자 지하철 

 

하마스 지하 터널은 크게 3가지 용도

첫 번째, 밀수용 터널

두 번째, 상업용 터널

세 번째, 전투용 터널

 

하마스 주장에 따르면 가자지구에 약 500km 규모의 지하 터널이 존재한다고 한다. 

 

군사력의 차이에도 하마스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지난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 조치에 대한 보복이라고 한다. 특히 지난 16년간 가자지구 봉쇄 정책은 불씨를 제공했다고 한다.

 

Q. 팔레스타인 내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확장되며, 이것 역시 늘어났는데요, 이번 전쟁의 원인이 된 이것은 무엇일까요? 유대인 정착촌을 둘러싼 갈등

 

2023년 하마스는 왜 이스라엘을 공격했나?

 

1.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 건설과 폭력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 점령지 서안지구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점령지 내 정착촌을 건설하고 유대인을 이주시켰다. 이는 불법이었지만 이스라엘은 묵인해 왔다. 2023년 1월 기준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의 불법 정착촌은 약 100여 개에 달했다. 유대인 정착민 인구는 서안지구에는 약 45만 명, 동예루살렘에는 약 22만 명에 달했다.

 

2023년 이스라엘 총리는 서안지구 내 불법 정착촌을 합법화했다. 심지어 기존 정착촌 내 약 5,600채의 주택 추가 건설 계획도 승인했다. 팔레스타인은 유대인 정착촌 건설 과정에서 강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살던 집에서 퇴거를 거부하면 강압적으로 끌어내고 공기총을 발사하며 위협까지 했다. 불법 정착촌 내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폭력 문제가 극심해졌다. 이스라엘 군경과 유대인 정착민에게 살해당한 팔레스타인은 100여 명에 달했다.

 

2. 알 아크사 폭력 사태

알 아크사 사원은 이슬람과 유대교 모두가 성지로 삼고 있는 곳이다. 사원 내부에서는 이슬람교 신자만 예배가 가능하고 유대교의 예배와 기도는 사원 바깥에 있는 통곡의 벽에서 가능했다. 이는 종교적 충돌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유대교 신자들의 사원 접근이 빈번해졌고 2023년 4월 5일 이슬람의 라마단 기간이자 유대교의 유월절이 시작되던 때 이스라엘은 사원에 경찰 병력을 투입해서 예배 중이던 이슬람 신자를 폭행하고 체포했다.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물론 아랍권의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규탄으로 이어졌다.

 

3.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

이스라엘은 사우디와의 비밀 회담으로 아랍권과의 관계 개선을 꾀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권에서 형님 국가로 통해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수교를 맺는다면 아랍권 국가들과 관계 정산화를 꾀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사우디와 수교조건으로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제안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타와 협상할 것이고 하마스는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마스는 전쟁을 일으켜 존재 각인과 이스라엘과 사우디 수교를 방해하려 했다.

 

하마스의 전쟁으로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을 중단한다. 

 

4. 이스라엘 내부 갈등

내분의 불씨가 된 건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개혁안이었다. 이스라엘은 헌법이 아니라 기본법이 존재한다. 정부가 법안을 내면 대법원이 검안을 하는데 대법원은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법안을 대부분 무효화를 시켰다. 현 정부는 극우정부로 이스라엘에 유리하고 빠르게 법안을 처리하고 싶어 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대법원의 권한을 없애버리기 위한 것이 바로 사법개혁안이다. 

 

이 사법개혁안은 대법원의 역할을 무력화해 정부의 독주를 위한 것이다. 이에 야당 의원들과 시민들이 시위에 나선다. 

 

하마스는 이 내분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 전쟁의 향방을 가를 헤즈볼라의 등장

헤즈볼라 - 알라의 당(신의 당)이라는 뜻의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투쟁 조직으로 레바논 내 정규군보다 강력한 무력을 소유

 

1982년 이스라엘은 PLO의 소탕을 위해 본부가 있는 레바논을 침공하는데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서는 무장 투쟁 조직이 바로 헤즈볼라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없애고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땅에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헤즈볼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비정규 군대로 이스라엘과 맞붙을 정도의 전투력을 소유하고 있다.

 

세속 왕정 팔레비 오아조가 무너지고 이슬란 공화국이 들어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에 반이스라엘 조직을 직, 간접적으로 지원해 왔다. 이란은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지원해왔다. 

 

이를 알고 있던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헤즈볼라 참전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했다. 이란은 하마스만큼이나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를 반대했다.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에 참전할 수 있다는 얘기를 공식적으로 했고 실제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접경지역에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헤즈볼라뿐 아니라 아랍권의 다른 조직들도 전쟁 개입 선언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10월 7일 하마스는 기습 공격한 날 최소 1,200명의 이스라엘 국민을 살해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전기와 수도를 차단하고 외부물품의 유입마저 차단했다.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은 전쟁에 기다리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품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가자지구에 있는 110만 명의 주민 중 절반 이상인 약 60만 명의 주민이 집을 잃은 채 피난길에 나섰다. 현재 유엔의 휴전 결의안이 미국의 반대로 부결되며 또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평화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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