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드라마 보는 망고예요.
벌거벗은 세계사 121회에서는 인류의 문명과 함께 발달을 거듭한 신의 물방울 와인 그리고 와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단연 프랑스입니다. 와인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와인 종주국이 되었는데 프랑스 와인이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에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와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프랑스 와인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게요.
| 세계 최초 와인 양조를 시작한 이집트
이집트는 현대 와인 양조와 비슷하게 와인을 양조한 최초의 지역으로 기록되어있다. 포도나무도 수입해서 키웠다.
- 고대 이집트 와인 양조 레시피
① 아치형 덩굴시렁에 포도를 매달아 재배해주세요.
② 수확한 포도는 발로 밟아 즙을 내줍니다.
③ 즙을 짜고 남은 포도 찌꺼기는 압착기에 넣어 남은 한 방울까지 짜주세요.
④ 포도즙을 모아 항아리에 넣고 발효시켜 주면 이집트 특제(?) 와인 완성!
초기에 와인은 귀해서 제사에 쓰이거나 이집트 왕 파라오가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왕의 무덤에도 암포라에 와인을 같이 묻었는데 와인이 파라오를 부활시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Q. 고대 이집트에서는 와인을 마시고 이것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신의 부가 과시됐는데요, 어떤 행동이었을까요? 구토 (와인을 마시고 구토하는 것을 벽화로 남겨 과시하고 싶었던 귀족들)
귀족만 즐기던 와인은 그리스에 전해지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30세 미만의 남성과 여성이 와인을 마시는 것을 금지하였다. 여성이 와인을 마시면 이혼을 당하거나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Q. 로마에는 아내가 와인을 마셨는지 확인하기 위해 남편에게 이것을 허용하는 법이 있었는데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부인의 음주 여부를 가리기 위해 기습 키스를 하는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카르타고에서 농업 교과서를 얻는다. 이 책에 좋은 와인을 만드는 방법이 적혀있었는데 포도 재배부터 와인 양조까지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바뀐 식무화로 인해 필수품이 된 와인은 지위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와인은 로마를 넘어 전 유럽으로 확산하기 시작한다. 로마군이 직접 와인을 양조한 것이 와인 확산의 계기가 되었다.
| 프랑스가 독보적인 와인 종주국이 된 이유?
첫 번째 - 종교
프랑크 왕국은 국교로 기독교를 지정했다. 프랑크 왕국 곳곳에 교회와 수도원이 건설되기 시작했는데 다수의 수도원이 와인 양조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다. 당시 수도사들은 자급자족의 원칙에 따라 성찬식용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나무 재배부터 와인양조까지 직접 관리했다. 수도원의 살림을 꾸리기 위해서 와인을 판매했다.
십자군 전쟁에서 유럽 연합군이 패하며 추락한 교황의 권위에 비해 프랑스 왕권은 강화되었다. 프랑스 왕은 교황을 강제로 아비뇽으로 이주시키며 이후 약 70년간 프랑스 왕의 통치를 받게 된다.
아비뇽 유수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교황청을 강제로 프랑스 남부 아비뇽으로 옮겨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머무르게 한 사
아비뇽 유수로 교황과 함께 이동한 대규모 사제단은 미사에 사용할 와인을 찾던 중 최상급 와인을 발견한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수도원에서 만든 와인이었다. 부르고뉴 지역은 풍부한 일조량과 석회질이라 배수가 잘 되는 토양으로 품질 좋은 포도를 키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교황은 시토 수도회의 와인을 미사 때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시토 수도회 와인
왕과 귀족들까지 사로잡으며 인기를 더해 간 부르고뉴 와인.
두 번째 - 떼루아
떼루아는 농부의 숙련도, 기후, 땅의 경사도, 토양 등 와인을 만드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시토 수도사들은 구역에 따라 맞춤 양조 방식을 적용하여 부르고뉴 와인만의 특색이었다.
프랑스 떼루아의 정석은 바로 샹파뉴(샴페인) 와인이다. 상파뉴에선 적포도의 껍질을 벗겨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봄이 되면 와인 병이 폭발했는데 깨지는 이유는 상파뉴 지방의 떼루아 때문이었다. 추운 상파뉴는 포도를 늦게 수확해서 와인을 양조하다 보니 겨울에는 와인 발효가 잠시 중단되었다. 봄이 되면 다시 발효가 시작되는데 이때 탄상이 생기며 압력 때문에 병이 깨졌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바로 수도사 돔 페리뇽이었다. 포도 품종을 혼합해 와인을 만드는 블렌딩 기법을 창시하기로 했다. 샹파뉴 와인의 특색이 된 탄산으로 샴페인이 탄생한다. 돔 페리뇽은 샴페인의 탄산가스의 압력을 없애기 위해 탄성과 유연성이 좋았던 코르크 마개를 사용한다.
세 번째 - 세계 박람회
파리 박람회는 보르도 와인을 선보이기로 한다. 프랑스가 세계박람회에 보르도 와인을 내놓은 이유는 영국에서 고급 와인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이 보르도 와인을 고급으로 여기기 시작한 때는 백년전쟁 때이다.
백년전쟁
137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지속된 프랑스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과의 전쟁
1855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프랑스 대표 산업 중 하나로 선정된 보르도 와인.
| 프랑스 와인의 위기
첫 번째 - 해충의 습격
파리 세계 박람회를 마치고 8년이 지난 1863년 포도나무 잎이 아무 이유 없이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하더니 포도나무가 말라죽기 시작했다. 이 원인을 조사하던 식물학자는 살아있는 포도나무뿌리에 노란색 가루가 붙어있는 걸 발견한다.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니 몸길이 1mm 내외의 작은 벌레 포도나무 뿌리 진딧물이었다.
이 사태가 발생하기 1년 전 프랑스 로크모어에서 와인 상인이 프랑스와 미국의 품종 비교를 위해 집 마당에 미국산 포도나무를 심었다. 이때 미국산 포도나무에 붙어있던 필록세라가 프랑스 포도나무에 옮겨진 것이다. 필록세라는 그 후 20년이 넘게 프랑스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결국 1870년 필록세라를 물리칠 예방법을 찾았는데 미국 포도나무 뿌리에 프랑스 포도나무 가지를 접목하는 것이었다. 현재 유럽에서 재배되는 대부분 포도나무는 미국산 포도나무에 접붙인 신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두 번째 - 히틀러의 등장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농부들은 포도밭이 전쟁터로 변하기 전에 포도를 수확해야 했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포도 농부를 현역 소집 연기해 주기도 했다.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수뇌부들은 프랑스 와인에 심취해 있었다. 독일은 프랑스 와인을 강탈하기 시작했는데 상파뉴의 경우 일주일 만에 약 200만 병의 와인을 강탈당했다. 히틀러의 와인 저장고에는 약탈한 50만 병의 와인이 있었다고 한다.
세 번째 - 파리의 심판
1976년 어느 여름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는 자신의 와인숍과 와인 아카데미를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를 기획한다. 이때가 마침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이한 시기여서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 하기로 한다. 테스트 결과 화이트 와인 1등을 미국 와인이 차지한다. 레드 와인의 결과 역시 미국 와인이 1등을 한다.
프랑스인들은 이일을 조용히 넘기고 싶었지만 2주 후에 뉴욕 타임지에 대서특필된다. 파리의 심판이 이 기사로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엄청난 파장이 일어난다.
2006년 파리의 심판 재대결이 벌어지는데 다시 미국 와인이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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