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46회
'비밀의 창시자-비트코인이 처음 생기던 그날'
비트코인 첫 발행일은 2009년 1월 3일이었다. 비트코인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창시자는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의 실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08년 10월 31일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백서를 커뮤니티에 발표했다.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을 처음으로 발행했다. 지금까지 발행된 비트코인은 약 1,970만 개 중에 사토시 나카모토는 약 110만 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약 110만 개는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100조 원 정도 된다.
2010년 말 사토시 나카모토가 돌연 사라져버린다. 사람들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군지 찾기 시작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CIA(중앙정보국)라는 말이 나왔다. 사토시 나카모토 이름에 힌트가 있다. 일본 이름 구성에 따르면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상한 이름이라고 한다. 나카모토는 성으로 많이 쓰이고 사토시는 이름으로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일본이름 구성에 따르면 나카모토 사토시가 맞았다.
나카모토 사토시를 한문으로 번안하면 중앙 정보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토시 나카모토를 CIA라고 하는 것이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두번째 후보는 일론 머스크이다. 그 시작은 블로그에 올라온 글 때문이다. 글을 작성한 사람은 스페이스 X의 전 직원 사힐굽타로 일론 머스크가 비트코인을 개발했을 것이라 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쓰는 표현과 일론 머스크가 쓰는 표현이 비슷하다고한다. 'Peer-to-Peer'로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에는 이 표현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비트코인을 구매해 큰 차익을 본 일론 머스크는
비트코인 초기에 참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했고 사토시 나카모토는 그가 아닌 것으로 사람들을 생각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크립토그래피 메일링리스트에 처음 비트코인을 공개했다. 그곳은 사이퍼 펑크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다. 사이버펑크는 정부와 대기업등 거대한 집단이 정보 통신 기술을 이용해서 개인을 감시 통제하고 있으니 암호 보안 기술을 이용해서 스스로를 지키자는 운동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도 사이버 펑크이다.
비트코인 백서를 처음 공개한 2008년은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났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진 시기였다. 당시 미국에서 4번째로 큰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고 그 영향으로 기업들이 연달아 망하면서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리먼 브라더스 은행이 파산한 이유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대출을 갚을 능력이 부족한 저소득 계층
모기지
주택을 담보로 하는 대출
대출을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집만 있으면 대출을 마구 남발하는 것을 말한다. 은행은 대출 채권으로 또 다른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니 대폭락 했고 파생상품에 투자한 은행들까지 줄줄이 파산했다. 미국은 화폐 발행을 늘렸다.
돈을 찍어내 은행을 구제했지만 인플레이션이 생기면서 국민들의 생활은 힘들어졌다. 이 난리속에 나타난 것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괴짜대통령으로 유명한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했다. 이렇게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을 채택한 이유는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엘살바도르는 과거 법정화폐 콜론 시절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유명했다.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화폐가치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인플레이션 방지책은?
- 총발행량은 2,100만 코인이 될 것입니다.
- 액수는 4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발행량을 제한했으니 인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2014년 3월 6일 미국에서 특종이 나오는데 사토시 나카모토를 찾았다는 기사가 나온다. 기자가 찾은 사람은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로 일본계 미국인이다.
그는 금융 정보 회사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한 이력이 있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비트코인이 참여했었지만 지금은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하루만에 입장을 바꿔 자신은 비트코인과 관련이 없다고 한다. 그전 인터뷰에서는 왜 참여했다고 대답했냐고 묻자 자신이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그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게시판에 나타나 자신은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라고 글을 썼다.
비트코인 유저들이 유력한 사토시 나카모토 후보로 지적한 사람은 해럴드 토마스 피니 2세로 사람들은 그는 할 피니라고 불렀다. 그는 비트코인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유명한 컴퓨터 공학자이자 암호학자이다. 그리고 사이버펑크였다.
사토니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에 관심을 보이는 할피니에게 비트코인 10개를 보냈는데 이게 비트코인 첫 거래였다고 한다. 할 피니는 사토시 나카모토 제외 비트코인을 최초로 채굴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토니와 함께 비트코인 초기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가 살던 마을에 할 피니도 살았다고 하는데 그 기간이 무려 10년이나 되었다. 그런데 할 피니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그는 2009년 8월 루게릭 병에 걸렸다고 한다. 몸이 굳어서 2011년 은퇴한 할 피니는 안구마우스를 통해 글을 쓸 수 있었다.
할 피니가 하루 종일 안구마우스를 통해 작성한 글에서 자신은 사토니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사망 후 할 피니의 시신을 냉동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사토니 나카모토가 누군지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입증할 가장 완벽한 방법은 제네시스 코인(사토시가 가장 처음 채굴했던 비트코인)을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네시스 코인은 지금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저를 신비한 그림자 같은 인물로 계속 이야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언론에서 비트코인을 불법적인 통화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 뿐이니까요. 그런 시각을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대한 시각으로 바꿔주시고 개발 참여자들에게 더 많은 신뢰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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