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드라마 보는 망고예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66회 주제는 일제강점기 천재과학자 우장춘 그의 업적 뒤에 가려진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66회 줄거리 리뷰 시작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65회 줄거리 리뷰 꼬꼬무 베트남에 고립된 3천 명, 필사적인 ‘1975 베트남 탈출기’ 베트남 대탈출 (tistory.com)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65회 줄거리 리뷰 꼬꼬무 베트남에 고립된 3천 명, 필사적인 ‘1975
안녕하세요~ 교양 보는 망고예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64회 시청률은 4.0%를 기록했네요. 이번주 꼬꼬무 주제는 베트남에 고립된 3천 명, 필사적인 ‘1975 베트남 탈출기’로 베트남 전
youngandyoung.tistory.com
출 연 진 :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
초대손님 : 제아, 라이머, 최영준

수용소로 찾아온 이 남자는 스나가 나가하루로 과학자다. 자신을 한국으로 강제송환해 달라고 하는데 당시 한국과 일본은 국교가 단절된 상태였다.

비운의 천재 과학자 우장춘

우장춘의 아버지는 한국 사람으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살인을 당한다.


경찰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이 들어와 우리가 그자를 죽였다고 자수하는데.. 살인범은 장춘 아버지의 친구와 그의 하인이었다. 그들은 장춘 아버지와 같은 조선사람이었는데 살인한 이유는

조선의 신하로 그대로 둘 수 없었다고 한다.

1895년 경복궁에 쳐들어가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 바로 을미사변. 이 사건에 조선인 군인도 참여했는데 그중 주도적인 인물이 우범선이었다. 고종은 을미사변을 가담자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고 우범선은 일본으로 망명을 한다. 을미사변 8년 만에 친구에게 암살을 당한다.

우장춘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여자를 소개받는데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장춘을 반대하는 와타나베 코하루의 부모님.

와타나베 코하루는 부모의 반대에도 친정과 의절하고 결혼을 한다. 아이를 임신한 부부는 아이에게 아내의 성을 주고 싶어 했다. 한국이름을 갖고 있던 우장춘은 자식까지 자신과 같은 차별을 받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가 친정과 의절한 상황이어서 아내의 성도 사용할 수 없었다.

고민하던 중 지인의 도움으로 아내는 그 집에 양녀가 되었고 자신은 데릴사위가 되면서 스나가라는 성을 받게 된다.
겹꽃 페튜니아를 만들기 위해 많은 회사들이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한다.

당시 겹꽃 페튜니아는 관상용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우장춘 박사는 세계 최초로 완벽한 겹꽃 페튜니아 종자 개발에 성공한다. 당시 페튜니아 종자의 가격은 당시 금값의 10배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우장춘 박사는 어떤 대가도 받지 못했다. 그가 원했던 건 이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었다.

본관 건물에 불이 나면서 자신의 모든 논문에 대한 기록은 불타버리면서 자신의 박사 학위도 날아가 버린다.

다시 박사 학위에 도전한 우장춘은 자신의 나이 38세에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우장춘은 찰스다윈의 진화론의 오류를 지적했다.

서로 다른 종이 (자연상태에서) 교잡해 새로운 종이 탄생할 수 있다고 처음으로 증명한 사람이 우정춘 박사였다.


자연상태 교잡인 것을 장춘이 발견한 것이다.

우장춘의 삼각형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논문을 냈음에도 우장춘 박사는 승진을 할 수 없었다. 이는 논문에 쓰인 그의 이름 때문이었다. "나가하루 우" 데릴사위가 되면서 스나가라는 성을 받았지만 우장춘 박사는 아버지의 성 '우'를 고집했다.


독립한 대한민국은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가난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한다. 식량난을 해결하려면 좋은 종자를 심어 식량을 늘려야 하는데 일본은 농업기술자들과 모든 시스템을 가져가 버렸다.

우장춘 박사는 한국에 와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가족들은 연고도 없고 한국말도 못 하는데 가면 고생이라며 반대를 한다.
우장춘 박사가 출국하려면 국가의 허락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수용소로 찾아가게 된 우장춘 박사.

당시 한국정부는 우장춘 박사를 데려오면서 사례금으로 100만 원(공무원 1년 치 금액)을 줬는데 우장춘 박사는 그 돈을 우량종자를 사는데 전부 사용한다.
저는 지금까지 어머니의 나라인 일본을 위해서
일본인에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이 나라에 뼈를 묻을 것을 여러분에게 약속합니다.

현영주(97) 중앙원예기술원 동료

우장춘 박사가 입국한 지 2달 만에 6.25 한국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된 대한민국. 당시 사회지도층의 일부는 일본으로 피난을 가기도 했다. 우장춘 박사는 일본으로의 피난길을 거부했다.

1950년대 대한민국에서 먹었던 배추의 모습이다. 이것을 우장춘 박사는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배추로 개량하는 데 성공한다.


귤 또한 대량 생산 할 수 있도록 개량하는데 초석을 다진 사람이 우장춘 박사이다.


무와 감자 역시 병충해에 강하고 일정한 크기로 자랄 수 있도록 우장춘 박사가 개량한 것이다.

농민들은 새로운 농업기술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우장춘 박사는 농민들에게 씨 없는 수박을 보여주면서 육종학의 필요성과 우수성을 알렸다.
우장춘 박사는 모친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일본에 갈 채비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출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우장춘 박사는 모친 사망 소식을 전보로 통보받게 된다.
1959년 6월 우장춘 박사는 병원이다. 위와 십이지장 궤양 때문에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평소 지병이 있었는데 무리하게 계속 일하다 악화가 된 것이다.
입원 두 달째 되던 어느 날



고맙습니다.. 나의 조국이 드디어 나를 인정해 주었군요. 기쁩니다.
우장춘 박사는 그로부터 3일 뒤인 1959년 8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 온 지 9년 5개월 61세의 나이로 잠들었다.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 당신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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