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양 보는 망고예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 지역에서 무려 10명의 부녀자가 잔인하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희대의 살인사건.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한 최악의 미제 살인사건의 범인이 33년 만에 밝혀진 순간이다. 화성 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에 대한 이야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83회 줄거리 리뷰 시작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82회 줄거리 리뷰 '우리는 만나야 한다' (tistory.com)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82회 줄거리 리뷰 '우리는 만나야한다'
안녕하세요~ 텔레비전이에요. 오늘 꼬꼬무는 1971년으로 돌아갑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특별한 만남 1971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동계 프레올림픽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곳에서 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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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연 진 :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
초대 손님 : 윤시윤, 치타, 이용주
1990년 11월
사람들은 13살 고은이를 찾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삼촌은 야산에 올라가 고은이를 찾았는데 모습이 참혹하다. 두 손과 두 발이 뒤로 꺾인 채 결박되어 있고 교복, 가방, 노트, 도시락통은 주변에 흩어져있다. 누군가 13살 고은이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부검 결과 고은이는 성폭행을 당한 뒤에 목이 졸려 사망했다. 범인은 칼로 고은이의 가슴을 난도질해 놨다. 고은이 사건은 30년 가까이 미제사건으로 묻혀있었다.
이형사는 증거품을 찾았는데 어디에도 없던 증거품이 오산경찰서 과학수사팀에 있다는 걸 알게된다. 증거품은 다행히 잘 보존되어 있었다.
검출된 DNA를 비교해 봐야하는데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구속, 수감자를 대상으로 DNA를 검사를 하고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다. 국과수는 데이터베이스와 비교를 의뢰하는데 일치건이 나온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다. 8차 사건은 범인을 검거, 모방범죄로 결론난 사건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에 투입된 경찰 연인원만 205만 명이었다.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만 3천 명이 넘었다.
이춘재는 부산교도소에서 25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였다.
화성 10차 사건 이후 3년 뒤 1994년 1월 청주 공터에서 젊은 여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둔기에 맞은 뒤 목이 졸려 살해되었다. 성폭행 흔적이 있고 온몸은 스타킹으로 결박된 시신이었다. 부검결과 저항한 흔적이 없고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다. 면식범에 의한 계획적인 살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담당형사는 그녀의 가족들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가족들 중에 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피해자의 형부 이춘재였다.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도 마지막으로 다녀간 곳도 형부 이춘재의 집이었다.
이춘재 집 화장실에서 처제의 혈흔이 검출된다. 이춘재는 아내가 가출을 해서 홧김에 처제를 살해했다고 진술한다. 처제가 자신의 집에 오면 오렌지 주스를 꺼내 마시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이춘재는 주스에 수면제를 타놨었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서 이춘재는 태도를 바꾼다.
전 안죽였습니다.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로 자백한 거라고요
1심,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이춘재는 최종선고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부산교도소로 이춘재를 만나러간 이형사에게 이춘재는 모르겠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현장 증거물에서 이춘재 씨 DNA가 나왔습니다.
명백한 증거에도 이춘재는 혐의를 부인한다.
나머지 사건에는 DNA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범인임을 입증하려면 이춘재의 자백이 필요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2006년에 모두 만료되었다. 이춘재가 범행을 자백할 이유가 없었다.
이춘재는 조사는 싫지만 프로파일러들과 대화는 하겠다고 한다. 자신의 가정사를 얘기하는 이춘재에 화성 사건 얘기를 꺼내면 표정이 변했다. 월요일에 접견을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프로파일러들은 일부러 안 가고 화요일에 간다. 이춘재는 왜 어제 안 왔냐고 묻는데 수시팀은 프로파일러를 먼저 들여보낸다.
이춘재는 진실을 밝히면 경찰이 곤란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이춘재는 종이하고 펜을 달라고 한다.
12건은 화성에서 한 거고 2건은 청주라고 하는 이춘재. 처제 살인사건을 포함하면 살인만 총 15건이라는 얘기다.
수사팀은 모든 사건에 대해 자백을 받는데 성공한다.
이춘재는 왜 자백했을까?
프로파일러는 이쯤에서 내가 자백하면 너희들에게 훨씬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충격받은 상대를 보며 자신이 느낄 만족감을 기대했을 거라고 한다.
처음 접견 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교도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경기도에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경기도라면 화성사건밖에 없으니까
그때부터 왜 왔는지 알았습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
.
몇 년 전 교도소에 있을 때
입안 점막에서 DNA 채취를 해 갔어요
그때 곧 저를 잡으로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좀 늦게 오셨네요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한 가정집에서 벌어진다. 선옥이 엄마는 아침에 학교가라고 선옥을 깨우려는데 자는 줄 알았던 딸이 죽어있었던 것이다. 범인은 강간 후 손으로 목을 눌러 살해했다. 당시 선옥의 나이는 만 13세였다. 10달이 지난 어느 날 경찰은 범인으로 22살 윤성여 씨를 지목한다.
당시 방사성동위원소 감정을 실시했는데 이는 체모에 어떤 성분이 있는지 분석한 것이다. 체모에는 중금속 성분이 많이 검출되었다. 경찰은 용접공 기계수리공 공장 노
동자들의 체모를 수거해 분석했다. 체포된 윤성여씨의 수치가 사건형장에서 발견된 체모 수치가 비슷하게 나왔다.
그리고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일명 B형 남자 잔혹사라고 불렸는데 그때 사건 형장의 증거품을 통해 추정한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마침 윤성여 씨가 B형이었다. 실제 범인 이춘재는 O형이었다.
윤성여씨는 소아마비가 있어서 제대로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 사람을 경찰은 앉았다 일어났다를 수백 번 시키고 잠도 안 재우고 물도 주지 않았다. 윤성여 씨는 강압수사를 못 이기고 허위 자백을 한다. 얼마 후 윤성여 씨는 살인 강간치사 범죄 사실에 대해 모두 유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추가 자백 사건 01 여고생 피살 채 발견
논 바닥 볏짚단 속에서 김 모 양이
스타킹으로 양손이 뒤로 묶이고 목이 졸린 채 숨져 있는 것을 발견
추가 자백 사건 02 여 국교생 실종 12일째
김현정 양(9세)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실종
추가 자백 사건 03 10대 여공 피살 채 발견
콘크리트 흉관 속에 17세 박모 양이
양손이 뒤로 묶인 채 목 졸려 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추가 자백 사건 04 주부 셋방에서 피살 채로
김 모 씨가 양손이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린 채
흉기에 가슴을 찔려 숨져있는 것을 남편 김 모 씨가 발견했다.
청주 두 건은 범행 수법이 비슷했지만 지역이 달라서 연쇄살인사건에서 제외되었다. 화성과 청주 경찰서 간의 공조가 부실했다.
6차와 7차 사이 수원 화서동 여고생 살인 사건은 무고한 용의자가 지목된다. 16살 이 모 군도 조사 과정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 사망하면서 사건조사는 희지부지 마무리가 되었다.
9살 현정이 실종 사건은 시신을 발견하지 못해서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되었다. 경찰은 사체를 유기한 장소를 이춘재에게 물었는데 산 뒤쪽 건물 근방에 옮겨놨다고 한다. 경찰은 이춘재 증언에 따라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지만 찾지 못한다.
현정이가 실종되고 몇달 후 경찰은 산에서 현정이의 가방과 줄넘기로 결박되어 부패된 양손 뼈를 발견했다. 경찰은 주검을 발견하고도 사건을 은폐했다. 1989년 당시 윤성여 씨를 검거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실종이 아니라 살인사건이라는 게 알려지면 경찰들이 곤란해지기 때문에 은폐한 것이다.
윤성여 씨는 무려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22살이었던 윤성여 씨는 2009년 42살이 돼서야 광복절 특사로 출소할 수 있었다. 윤성여 씨는 재심을 청구한다.
2020년 77월 2일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이춘재가 나타났다.
윤성여 씨가 무죄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3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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