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예능 보는 망고예요. 어느덧 당신이 혹하는 사이 시즌4 최종회네요. 오늘 당혹사의 주제는 '시청률을 노린 청부살인?, 인류가 멸망한다?! 양극단의 전망'입니다. 국민 MC라고 불리는 사람이 저지른 최악의 시나리오 청부살인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출 연 진 : 전현무, 변영주, 봉태규, 코쿤
초대손님 : 랩퍼 쿠기, 심용환
브라질 방송 [카날 리브리]의 MC 왈라시 소자

사건이 터지면 누구보다 빨리 그 현장에 도착하고 성역 없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낱낱이 고발해 온 인물로 인기에 힘입어 정계도 진출합니다.
시청률을 위해 살인 청부를?
시청률에 눈이 먼 살인범 VS 정치적 음모의 희생양
2008년의 사건, 당시에도 큰 파장이 있었던 사건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보도되었었다.
브라질 방송 [카날 리브리]의 MC 왈라시 소자는 '미디어가 아니라 정치로 지역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어필되면서 이 지역에서 3선 의원까지 역임한다.
브라질의 대표적 빈곤도시 마나우스
"1992년 부터 1999년 사이에 아마조나스 주 전체 살인 중 약 90%가 마나우스에서 일어났다."
전직 경찰이였던 왈라시 소자가 마나우스에서 '마약조직을 소탕하겠다'라면서 만든 프로그램이 바로 [카날 리브리]였다.
범죄와 늘 맞닿아 있는 '약육강식' 남미의 현실
#카날 리브리가 연출되었을 수 있다는 몇 가지 방송

1. 공장앞으로 지나가다 차량을 발견하고 운전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촬영하게 된다.

2. 휘발유를 부어 처형당한 거 같다는 시신을 발견한 [카날 리브리] 방송
브라질의 치한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냐면 2014년 기준으로 한해에 이런 식으로 죽는 사람이 약 6만명에 달한다.
# 결정적인 증인

체포 당시 상황이 기록된 수사 보고서
모아로도 알려져 있는 전직 경찰관 모아시르의 집에서
'마약 거래가 있다'는 제보를 익명의 고발자로부터 받았으며..
제보대로 실제 그의 집에서 마약 거래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늘 오전 그의 집에 대한 수색을 결정함.
피고인은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요 청하며 수색 협조를 거부하였고
그의 윗선에 있는 '왈라시 소자 의원에게 연락하겠다'는 협박을 하였음
체포 당시 모아의 주장 "내 마약 갱단의 보스는 왈라시" "방송을 위해 그가 살인을 청부"
왈라시의 큰 그림?!? 일석삼조
① 라이벌 갱단 제거
② 시청률 상승
③ 유력 정치인 발돋움
왈라시의 항변 "모아와의 일면식도 없다."

모아의 통화 내역에서 왈라시의 측근들 모두와 연락하고 지낸 것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나온다.
모아의 진짜 정체는 밀고자인가? 정보원인가?
왈라시는 저 사람은 알지만 이름이 모아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친한 관계가 맞더라도 '시청률 살인'의 증거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왈리시 자택 압수수색 당일 발견된 종이에 적인 메모 내용은 총기 리스트 자신의 필체가 아니라고 하는 왈라시.
토마스 바스콘 셀루스 주 정보부 장관
"메모에 적힌 무기가 상당한 양이라서 다들 놀랐습니다. 사용이 금지된 9mm 탄약이었습니다."
"금고에서 25만 헤알(한화 약 6,800만 원)이 발견됐습니다.왈라시 소자도 하파엘(큰아들)도 지금까지 그 돈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왈라시 금고에는 현금 다발이 가득했다. 돈에 대해 해명을 못한 왈라시. 경찰은 마약 갱단 운영 자금일 것으로 추정했다. 큰아들 방에 자물쇠로 잠긴 옷장이 있었는데 그 안에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9개의 탄피를 발견한다.
탄피에 대한 수사 결과,
"1년 전 마약상 살해에 쓰인 탄환과 큰아들이 갖고 있던 탄피가 일치했다."
왈라시 아들은 살인혐의로 체포된다.
2008년 7월 13일 왈라시 소자는 이 사건을 방송했었다.

모아는 국회윤리위원회를 만나 마약 밀매 현장에서 모아를 체포했다고 한 것부터가 수사기관이 꾸민 일이라고 5개월 만에 모아는 진술을 뒤집는다.
고문과 협박을 당해 허위 자백을 했다

이 당시 왈라시는 치안의원회 소속이였는데 사건을 조사하다보니 아동 성매매 사건의 배경에 유력 인사들이 있어서 왈라시는 '국회조사위원회를 열어 공정한 조사를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공감대를 얻어 조사가 시작되지만 2007년 별다른 이유없이 조사가 중단된다. 왈라시는 배후에 주지사가 있다고 생각했다.
조사를 주장한 다음 해에 왈라시 사건이 터지게 된다. 주지사와 시장은 친구사이이고 수사를 담당했던 총책임자는 주지사가 직접 임명한 토마스 바스콘 셀루스였다.

이 사건으로 왈라시는 의원직 박탈당하고 곧바로 도주한다. 도주 나흘 뒤, 독방 수감 보장을 받은 후 자수했다.
왈라시는 재판이 마무리되기 전, 2010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2017년 1월 1일의 교도소 폭동으로 모아는 숨을 거뒀다.
진실이 영원히 묻혀 버린 안타까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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