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171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천년제국 로마는 어떻게 몰락했나?'
| 로마의 전성기를 이끌 초대 황제의 등장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입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원로원 중심에서 황제 지배로 정치 체제가 변화가 반감을 가질까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황제로써 얻은 권력의 대부분을 원로원과 국민에게 돌려주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군 통수권, 화폐 발행권, 최고 종교권은 자신이 가졌다.
#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개혁
1. 도시 재건
당시 로마는 무질서한 개발로 완성도가 떨어졌다. 그리고 도시를 지은지 오래되어 홍수나 화재에 취약했다. 아우구수투스는 제국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해 대규모 공사를 진행한다. 특히 로마제국의 상징인 포로 로마노를 확장, 보수하는데 힘을 썼다.
포로 로마노
로마 주요 정부 기관 건물들이 있는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지
상하수도 정비와 각종 편의 시설을 증설했다.
Q. 아우구스투스는 도시를 재건할 때 군대를 투입하여 이것도 정비했는데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도로 정비
로마제국은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해 도로를 정비했다. 제국 전체에 약 8만 5천 km의 도로를 건설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제국의 도로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2. 속주 관리
속주(Provincia)
고대 로마에서 사용된 행정구역 단위로 이탈리아 외 로마제국의 지배 지역
아우구스투스 재위 초기에는 28개의 속주가 말에는 35개 이상으로 확장된다. 속주관리를 위해 총독을 파견해 중앙 정부에서 통치했다. 속주들에서 세금을 걷을 때도 도로망을 이용해 빠르게 운송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속주마다 안정적으로 세금을 거둬들이도록 신경을 썼는데 비정기적이던 인구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해서 인구와 재산규모를 파악했다. 인구 조사를 통해 속주와 속주민들의 재정에 맞는 세금을 거둬들였다.
아우구스투스는 다양한 문화, 종교를 포용하는 포용정책을 펼쳤다. 아우구스투스의 포용정책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판테온 신전입니다.
판테온 신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돔 건물 중 하나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의미가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관용과 포용을 통해 사회적 혼란을 막고 속주에서 지지를 받고자 했다.
| 속주민들의 민심을 위한 히든카드 '로마 시민권'
로마 시민권의 특권
로마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법적 지위와 권리
투표권, 재판권, 공직 진출, 적절한 세금 등의 혜택
속주민들이 선호한 시민권 획득 방법은 군입대였다. 시민권자가 군 복무를 마치면 보상으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군 복무 기간은 25년이었다.
아우구스투스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챙긴 것은 세계 최초의 전문 상비군 제도였다.
3. 상비군 제도
이전에는 농업이나 수렵 등 생업에 종사하던 시민들이 전쟁이 발발하면 전쟁터로 소집되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아우구스투스는 직업군인인 상비군 제도를 마련했다. 군인이 받는 월급은 일반인들보다 많았고 군 제대 후에는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연금 제도도 마련되어 있었다.
Q. 로마군은 심각한 군기 위반 사건이 발생하면 처벌을 위해 제비 뽑기를 했는데요. 제비 뽑기에서 걸리면 어떤 벌을 받았을까요? 집단 처벌을 위해 제비뽑기 형벌 시행
이 처벌의 이름이 '10분의 1형'이라고 했는데 로마군의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처벌 대상인 부대의 병사들을 10명씩 나눠 제비뽑기를 실행했다. 만약 부대 인원이 500명이면 50명이 처벌대상이 되었다. 제비뽑기에서 뽑힌 한 명을 남은 병사들이 매질해서 죽이는 형벌이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어 거의 사용되지는 않았다.
| 로마제국 최고 황금기! 오현제 시대 개막
오현제 시대 | ||||
제12대 황제 | 제13대 황제 | 제14대 황제 | 제15대 황제 | 제16대 황제 |
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재위 96~98 | 재위 98~117 | 재위 117~138 | 재위 138~161 | 재위 161~180 |
네르바는 무너진 사회와 정치 체제를 바로잡으며 오현제 시대의 문을 열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토지 배분, 상속세 면제 등 사회 복지 정책을 시행했다.
Q. 네르바 황제가 후계자를 선택할 때 이전과 달랐던 점은 무엇일까요? 원로원 의원 중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을 입양해서 후계자로 지정
그렇게 선출된 다음 왕이 트라야누스였다. 그는 군단을 이끌며 국경을 방어하던 유능한 총독이었다.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로마제국 내에서 존경받던 인물이다. 트라야누스는 로마제국 역사상 유례없는 최대 영토를 확보했다.
제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넓어진 영토의 국경을 안정화하고 방어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제15대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후한과 교역을 하기도 했다.
나라가 평화로워지면서 로마제국에서는 각종 축제와 공연들이 활성화되었다. 오현제 시대 최고의 절정기를 맞아 약 200년간 이어지게 된다.
| 황제의 권위를 추락시킨 암군들의 등장
Q. 콤모두스는 어떻게 아우렐리우스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친아들
선대 황제들이 인재를 후계자로 선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친아들 콤모두스가 있었기 때문에 친아들에게 황제 자리를 계승한 것이다.
콤모두스는 182년 콜로세움에서 열린 행사 당시 자신을 노리는 암살범과 마주치게 된다. 암살자를 자신에게 보낸 주동자의 정체는 바로 누나였다. 이를 알게 된 콤모두스는 우울증과 환각 증세를 앓고 자신을 영웅 헤라클레스의 화신이라고 칭했다.
검투사 경기에 출전한 콤모두스 700번 이상 출전했고 죽인 검투사가 1,2000명에 달했다. 192년 콤모두스는 31세 젊은 나이에 근위대 병사들에게 목이 졸려 죽임을 당한다.
# 로마제국 몰락의 이유
1. 군인 황제의 등장
군인의 권력으로 황제에 오른 인물은 막시미누스 트락스이다.
막시미누스 트락스
서기 235년에 즉위
로마제국 최초의 병사 출신 황제
로마 역사상 최장신 통치자
막시미누스는 말단 병사로 시작해 병사들의 지지로 군단장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황제가 된 막시미누스는 국정을 운영하기보다는 전쟁에 심취해 있었다. 로마 원로원은 막시미누스를 국가의 적으로 정했고 결국 병사들에게 암살당하게 된다.
막시미누스부터 시작된 군인 황제 시대는 약 50년간 지속되었는데 자신이 황제라고 주장한 사람만 50명이 넘었다. 원로원이 인정한 황제만 26명이었고 이들 중 대부분은 암살되었다.
암살된 황제가 많았기 때문에 황제들은 군인들에게 잘해주었다. 군인들의 월급을 올려주면서 부족해진 재정을 로마는 화폐를 찍어서 매우려고 했다. 급격히 가치가 떨어지는 화폐들이 생기자 몇십 배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화폐보다는 물물교환을 선호했다.
황제자리를 두고 내전이 끊이질 않았기 때문에 농민들도 전쟁에 끌려갔다.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해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이 끊기기 시작했다. 이후 본인의 땅에서 농사하던 농민들은 귀족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는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결국 로마의 중산층이었던 농민들이 몰락했다.
군인 황제 시대는 로마제국을 몰락시키는 데 일조한다.
2. 로마의 분열
콘스탄티누스 황제
최초로 기독교를 공인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정치적 판단으로 천도를 결정한다. 그가 수도를 옮긴 이유는 자신의 기반이 되는 기독교 세력이 많은 곳이 바진티움이었기 때문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가 두 아들에게 로마의 동쪽과 서쪽을 나눠 분할 상속하면서 로마는 분열되었다. 동로마제국은 무역으로 큰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다. 서로마제국은 자원이 제한적이어서 동로마에 많이 의지하고 있었는데 분할되면서 가난해지게 되었다.
3. 게르만인의 대이동
게르만인
로마인이 게르마니아라고 부른 지역에 살았던 모든 이민족의 총칭
로마제국은 잦은 내전과 전염병으로 인구가 감소했고 인플레이션으로 제대로 된 보상 지급도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병력을 모집하기 힘들었다.
게르만인을 용병으로 사용해 돈과 땅을 많이 주었다. 훗날 게르만인은 로마제국 요직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게르만인이 로마제국을 노린 이유는 훈족이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Q. 훈족은 이것 때문에 식량이 부족해지자 게르만인이 살던 서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기후 변화로 추워졌기 때문에
로마제국을 침입한 고트족은 사흘 동안 로마의 상징적인 공공시설들과 황제의 영묘들을 파괴했다. 황제의 누이동생을 비롯한 수많은 귀족과 시민을 포로로 만들어 노예로 판매까지 했다.
로마제국은 반달족과 고트족에게 제국의 일부를 넘겨주게 된다.
서기 476년 게르만인 출신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제국 마지막 황제를 퇴위시킨다. 그렇게 서로마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도로 삼은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 동로마제국은 중세 기독교 문명의 강대국으로 유지되다 1453년 5월 29일 오스만제국에 침략당해 로마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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