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드라마 보는 망고예요. 오늘의 벌거벗은 세계사의 인물은 에디슨입니다. 위인전에서 알고 있는 에디슨에 대한 이야기 말고 우리가 모르는 에디슨의 실체에 대해 알아볼게요. 벌거벗은 세계사 82회 줄거리 리뷰 시작합니다.
오늘의 교수님 : 우석대 전기자동차공학부 맹성렬 교수


대체 왜 천재 발명가인 에디슨이 전기의자 발명에 도움을 준 걸까?
이유는...

에디슨은 1847년 2월 11일 오하이오주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에디슨은 몸이 허약하고 질병이 잦았다. 알을 품은 에디슨 이야기는 실화라고 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에디슨은 3개월 만에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에디슨 엄마는 홈스쿨링을 시작한다. 에디슨의 엄마는 에디슨에게 책 읽기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중 에디슨의 인생을 바꿔 놓은 책을 만나게 된다.

과학 원리에 대한 설명과 실험 방법이 적혀 있는 이 책을 보며 독학으로 실험을 따라했다고 한다.


15살 에디슨이 시작한 첫번째 사업은... 기차에서 지루해하는 승객을 보고 1862년 2월, 에디슨은 신문을 제작한다.



혼자서 모든 일을 다해야했던 에디슨은 1년 만에 사업을 접게 된다.

에드슨이 구한 아이는 역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역장에게 전신기술을 알려달라고 한다.
전신기
모스에 의해 발명된 통신 장비. 손잡이처럼 생긴 부분을 눌러 신호를 보낸다. 이때 보내는 신호가 '모스 부호'이다.

보석가게는 뉴스를 전신으로 받아서 아침에 지역언론에 제공하는 일을 했다. 에디슨은 신입 전신 기사로 근무했다.

1869년 6월 22살의 에디슨은 인생 첫 특허를 등록한다.

이 발명품은 투표 결과가 자동으로 집계되는 자동 투표기입니다. 대중적으로 적용하기 힘들어 상용화에는 실패한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발명해야 한다.

에디슨은 전신 기술로 발명품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이 발명품은 주식 시세를 프린트해 주는 '스톡 티커'라는 기계이다. 당대 최고 전신 회사에 1,200대를 판매해 7만 8천 달러(지금의 가치로 약 23억 원)의 수익을 올린다.
스톡 티커
주식 시세를 모스 부호로 출력. 전선으로 연결된 곳은 동일한 내용이 프린트된다.

기존에는 한 개의 전선만 사용해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4중 전신기는 동시에 두 개의 메시지를 보내고 받을 수 있었다.
Q. 에디슨은 자신의 무궁무진한 창의력의 원천이 이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과연 무엇일까요?
낮잠





에디슨은 발명공장에서 간단한 발명품은 열흘마다 큰 발명품은 6개월마다 제작했다.
# 전화기


에디슨은 이미 발명된 제품은 개량 발명*했다.
개량 발명
최초로 개발된 발명에 새로운 구성이나 기능을 부가한 기술

벨의 전화기는 송신기와 수신기가 일체형이라 음성 품질이 떨어졌다. 에디슨은 송신기와 수신기를 분리하여 음성 전달이 명확하게 했다. 에디슨이 전화기를 개량 발명을 하면서 널리 이용되게 되었다.
# 축음기

실패에 좌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초의 녹음 기술인 축음기를 만들 수 있었다.
실패할수록 성공에 가까워지는 것
Q. 에디슨은 이후 축음기를 이용해서 획기적인 발명품을 만들었는데요, 무엇일까요?
말하는 인형


당시에는 잘 팔리지 않았지만 녹음 기술이 더 발전하고 히트 상품이 된다.

# 전구

뉴욕은 밤이 없는 도시가 될 수 있었다. 당시 에디슨의 나이는 32세였다. 전구 역시 개량 발명품이다.

영국의 조지프 스완이 백열등에 대한 특허를 먼저 출원한다. 조지프 스완은 전구 안이 진공상태여야 하는 건 알았지만 기술을 구현하지 못하고 전구의 수명을 늘리는데 실패한다.
전구 속에 진공 상태를 높이는 방법을 구현해 낸 인물이 에디슨이었다. 에디슨은 진공 펌프를 개선하고 기존에 몇 분을 버티지 못했던 전구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성공한다.



1,200개 이상의 램프를 밝힐 수 있을 만큼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전기 시스템으로 명예훈장을 수상한 에디슨.

런던박람회에서 에디슨 광고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백열전구를 개발해 낸 에디슨을 본 J.P. 모건은 뉴욕을 뒤바꿀 대형산업이 탄생했음을 알아봤다. 에디슨과 J.P. 모건의 만남은 뉴욕의 전기 시스템을 독점하고 미국 전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기 시작한다.



에디슨이 장악한 전기 시장을 서서히 파고드는 웨스팅하우스.




변압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교류가 경쟁력이 없어서 직류로 사업을 추진했으나 이후에 100여 개가 넘는 발전소를 지으면서 직류 발전에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에 직류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직류가 교류보다 기술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에디슨이 생각해 낸 방법은?
Q. 에디슨은 웨스팅하우스에게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요?
1887년 10월 교류의 위험성을 다루는 책을 발행


폭설로 무너진 전선 때문에 감전사망자들이 발생한다. 이후로도 감전 사고들이 계속 발생하면서 전기는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런 인식은 자칫하면 전기 사업 전체가 무너지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사우스윅은 우연히 감전으로 즉사한 사람을 보게 되고 전기 사형 방식을 고안하기 위해 에디슨을 찾아간다. 전기 사형 의자에 교류를 사용하게 하려던 에디슨은 사우스윅에게 웨스팅하우스를 찾아가라고 추천한다. 웨스팅하우스는 전기 사형 의자 자문을 거절한다.
사우스윅의 로비는 성공하여 전기를 사형에 사용하는 법이 통과된다. 결국 에디슨은 전기의자 자문을 맡으며 이때 사용하는 전기는 교류로 할 것을 조언한다.

전기의자 사형집행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전류 세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사형수가 즉사하지 않았다. 고통스럽게 죽어간 사형수.

에디슨과의 경쟁에서 돌파구가 필요했던 웨스팅하우스의 눈에 들어온 인물은 니콜라 테슬라였다.


테슬라는 교류를 활용한 다양한 특허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웨스팅하우스가 사용하던 교류 시스템은 개선할 점이 많았는데 이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던 인물이 테슬라였다.



AC vs DC 어느 시스템이 박람회에 쓰이게 될지가 큰 관건이었다. 바로 시카고 만국 박람회 전기 공사를 따내기 위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전류 시스템의 안전성을 대중에 홍보할 기회


VS



전 세계인을 감동시킨 20만 개의 전구들
이 박람회로 교류가 안전하고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박람회를 앞두고 부도 위기에 처했던 웨스팅하우스에 테슬라는 자신의 교류 특허권을 포기한다. 결국 회사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준 테슬라.
Q. 웨스팅하우스의 교류시스템으로 밝힌 시카고 만국 박람회의 전구는 그 빛을 장시간 유지할 수 없었는데요, 이유가 뭘까요? 에디슨 & J.P. 모건 측에서 백열전구 사용을 못 하게 한 것
이후 교류시스템은...


그 후 에디슨은...


영화 산업을 이끌게 된다. 영화 스튜디오까지 세우며 위세를 떨치게 되면서 동부의 영세한 제작자들이 에디슨을 피해 서부로 몰려가 할리우드를 세우게 된다.

전시 중인 에디슨의 전기 자동차는 전 세계를 통틀어 단 세대! 한 대는 미국 헨리 포드 박물관에 있고 나머지 한대는 우리나라 강릉에 에디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당시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된 가솔린 자동차에 밀려 출시되지 못한 에디슨의 전기차.


뒤이어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내연 기관차의 선호도가 높아진다. 게다가 1920년 텍사스에서 대규모 유전이 개발된다. 폭락한 기름값! 결국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를 몰아내고 전기차는 대중화되지 못한다.

이 말은 에디슨이 전기차를 발명하던 시기에 했던 말이다.

벌거벗은 세계사 82회 줄거리 리뷰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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