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드라마 보는 망고예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68회 주제는 58년 만의 복수! 아버지를 고문한 친일 경찰 ‘착혈귀를 찾아라’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68회 줄거리 리뷰 시작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67회 '목숨을 건 약속' 철의 여인과 매니저 김 꼬꼬무 산악인 고미영 (tistory.com)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67회 '목숨을 건 약속' 철의 여인과 매니저 김 꼬꼬무 산악인 고미
안녕하세요~ 교양 보는 망고예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67회 주제는 '목숨을 건 약속' 철의 여인과 매니저 김입니다. 철의 여인의 꿈과 그의 꿈을 응원하는 매니저의 이야기 꼬리에 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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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연 진 :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
초대 손님 : 김광규, 장희진, 적재
죽기 전에 내가 한 일을 남기고 싶구나
1942년 부산에서 17세 광우는 친구 5명과 일본에 대항할 비밀결사 조직을 만든다. 목표는 조선인을 노동자를 착취하는 조선방직 공장을 파괴하는 것이다. 광우와 친구들은 "일본은 망한다 대한독립만세"라는 전단지를 뿌리기로 한다. 광우는 잡히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광우를 불타게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노다이사건 "부산항일학생의거"였다.
부산항일학생의거(노다이사건)
부산에서 열린 구방경기대회에서 일본 학생에게 유리하게 편파 판정을 해서 이를 참지 못한 1,000여 명의 학생들이 대회심판장의 관사를 습격한 사건. 심판장의 이름이 바로 노다이.
이 사건으로 광우는 일제에 대항하는 데는 나이랑 상관없다며 일본에 대항하기로 한다.
전단지를 뿌리고 다음 계획을 세우던 광우에 들이닥친 경찰은 광우에게 수갑을 채운다. 항일 전단지를 다른 큰 사건으로 만들려던 경찰은 이미동이 시킨 거라고 하면 풀어주겠다고 한다.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경찰은 폭행과 고문을 이어갔다. 광우는 고문관에게 이렇게 외쳤다.
광우의 머릿속에 각인된 친일경찰 이름 "하판락"
김준기 자서전中
나는 부산의 경남도 경찰국의 감방 안에 다시 수감되었다.
담당 형사는 하판락이라는 조선인이었으며 거의 매일 같이 이들에게 불려 나가 취조를 받았다.
욕지거리들이 희미한 의식 속에 들려왔다. 개XX니 조센징이니 하는 말들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상하게 느낀 것은 나를 취조하고 고문하는 형사들이 모두 조선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일본인보다 더 지독하게 고문을 하였던 것 같다.
일본 경찰도 배우려고 했던 이들의 악랄함.
광우의 증언
고문을 당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고문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친일경찰은 주사기로 광우의 몸을 찔러 혈관이 잡히면 피를 뽑아 광우와 얼굴과 몸에 뿌렸다. 주사기 고문은 그 좁은 고문실이 피비린내로 가득 찰 때까지 계속되었다.
착 혈 고 문
당시 광우의 가장 큰 바람은 기절하는 것이었다. 10개월에 걸쳐 고문을 받은 광우는 재판에 넘겨졌고 재판 결과는 단기 1년에서 장기 3년 형을 받는다. 감옥에 갇혀있던 광우는 형무소의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다.
광우를 형무소 밖으로 내보내는 간수.
대한독립을 맞이하며 무려 2년 5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온 광우는 후유증을 극복하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돌아온 광우에게 마을 사람들은 나대니까 저꼬라지가 되었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이후 광우는 입을 굳게 닫는다.
광복 4년 후 1949년
대한 제국 황실의 종친 이기용
이기용을 체포하러 온 사람들은..
반민특위는 특별재판부, 특별검찰부, 특별경찰대가 있었다. 친일파 처벌을 위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 반민특위의 위원장이 될 것인가?
김상덕 위원장은 3.1 운동의 불씨가 된 2.8 독립선언의 주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광복 후 김구 선생님과 함께 귀국했다.
친일파란,
- 나라를 팔아먹은 자
- 일제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가담한 자
- 독립운동가들을 괴롭힌 자
그 기준에 따라 친일파 1호로 검거된 사람은 박흥식으로 당시 화신 백화점을 소유한 대표적인 부자였다. 그는 일제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고 태평양 전쟁 때는 비행기 공장을 설립 후 침략 전쟁에 협조했다.
나는 친일을 한 적이 없다. 나는 단지 사업가일 뿐이다.
당대 최고의 스타작가로 100편이 넘는 친일 문학 작품을 쓰고 전국을 돌면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일제의 학도병으로 나가라
이광수 [나의 고백] 中
일정에 세금을 바치고, 호적을 하고 법률에 복종하고, 일장기를 달고
황국신민서사를 부르고, 신사에 참배하고 국방헌금을 내고, 관공립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한 것이
모두 일본에의 협력이다.
더 엄격하게 말하면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도 협력이다.
반민특위는 하판락을 검거하고 증인으로 광우를 부른다.
1949년 8월 24일 오후 2시
재판장 : 이광우를 아는가?
하판락 :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재판장 : 고문한 사실이 있는가?
하판락 : 고문한 사실이 없습니다.
증언을 다 들은 재판장은 광우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일제치하에서 민족을 위해 큰일을 했네" 광우는 하판락이 죗값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친일파들은 재력과 지위를 이용해 온갖 수단을 사용했다. 삐라를 뿌려 친일파를 처단하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만들어 버렸다.
친일파 청산 = 민족분열 = 공산주의
광복 직후에 남과 북으로 나뉘어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한반도에 공산주의 프레임은 꽤나 효과를 봤다.
이 친일 경찰은 독립운동가 세분을 죽인 경찰인 노덕술이었다. 이 암살 계획에 자금줄은 화신백화점의 박흥식이었다.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는데...
살인청부업자가 자수는 한 것이다.
비록 살인청부업자지만 친일파의 돈을 받고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다.
1949년 국무회의록
노덕술 피검에 관하여는 그가 치안기술자임을 비추어 정부가 보증하여서라도 보석하도록 함이 요망
반민특위의 무분별한 난동은 치안과 민심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터임으로
헌법 범위 내에서 단호한 대책을 강구하신다는 유시에 대하여
불법 조사관 2명, 그 지휘자를 체포하여 의법처리하여 계속 감시하라 지령하시다.
위 지령을 내린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으로 대통령이 나서서 반민특위를 억압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 청산보다 치안과 반공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1949년 5월 반민특위 관사
김상덕 위원장은 아이들을 불러 방에서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한다. 집은 경호팀들이 둘러싸고 얼마 후 이승만 대통령이 나타난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와 노덕술을 풀어주라고 한다. 반민특위 활동기간이 끝나면 원하는 장관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화가 난 김상덕은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를 감싸주라는 얘기냐며 임시정부 대통령까지 한 분이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냐고 한다. 친일파를 청산하는 것이 국민들의 염원이라고 하는 김상덕 위원장.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 본부
반민특위 본부에 들이닥친 경찰은 전궁에서 모인 친일파 투서들을 불사른다. 30여 명의 반민특위 직원들은 그대로 체포된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습격지시를 인정한 이승만 대통령.
그 후 반민특위는 서서히 사라졌다.
처벌받은 친일파의 수는 0명이었다. 면죄부를 받은 친일파들은 대부분 재산과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상국의 아버지는 40년 만에 아들에게 증인소환장과 죄수번호 패찰을 보여주면서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을 하기로 한다.
귀하의 경우에도 항일운동에 참가하신 사실은 틀림없을 것으로 생각되오나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거증자료가 부족하거나
포상기준상 포상 범위에 포함되지 못하였기에
이번에 포상을 드리지 못하게 된 것이니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국은 10년 동안 모든 기관에 돌아다니며 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소득 없이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199년 인터넷의 보급으로 하판락을 검색한 결과 기사를 보게 된다. 물어 확인한 결과 그 하판락이 맞았다.
아버지에 대한 증언을 받아내기 위해 하판락을 찾아가기로 성국 씨는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아버지가 한 말은...
만나면 지기삐라(죽여버려라)
성국 씨는 하판락을 찾아가 아버지를 아는지에 대해 물으면 부정할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국씨가 생각한 묘수는....
너의 아버지가 김소복이를 말하더냐고 묻던 하판락은 나의 심복의 이름을 너의 아버지가 기억한다는 것은..
성국씨는 그 순간 친일경찰의 입에서 우리 아버지 이름이 나와버렸으니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친일경찰의 증언을 얻어낸 성국 씨.
성국 씨는 직접 만든 아버지의 공정서를 보훈처에 제출한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이광우 애국지사
그리고 2007년에 세상을 떠나시면서 이광우 애국지사는 아들에게 한마디를 남긴다.
고맙다
김상덕 위원장의 아들은 아버지 납북 이후 빨갱이의 아들이라는 낙인이 찍혀 취직도 못하고 여행도 금지당하면서 힘든 생활을 해야 했다.
하판락은 이광우 애국지사를 체포한 건 인정했지만 고문은 끝까지 부인했다.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꼬꼬무 69회] 수상한 비밀 작전! 은폐됐던 그날의 진실 ‘C-123기 추락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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