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40회
'인질범의 흉터'
2004년 8월 8일 서울에 한 빌라에서 할머니는 어린 손자를 보고 있다.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온 할머니는 거실에 혼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까무러치게 놀라게 된다. 남자는 할머니에게 회칼을 들이밀었다.
할머니 나 누군지 알지?
사실 할머니는 얼마 전에 수배 전단지에서 이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2004년 8월 1일 일요일 오후 7시 경찰서로 제보 전화가 걸려온다. 이틀 전에 한 여성이 경찰에 신고를 해왔는데 남자친구가 이별을 통보 받고 자신을 감금 폭행했다는 신고였다.
겨우 빠져나온 여성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이 사건은 서부경찰서 강력 1팀에 배정이 된다.
용의자는 35살의 이씨로 6년 전에 이미 혼인신고를 한 유부남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을 오래가지 못했다. 죄를 지어 교도소에 수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죄명은 강간치상죄였다. 결국 아내를 이씨를 떠났고 출소 이후 새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이번에는 여자친구를 감금 폭행한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여자친구에게 딱 한번만 만나주면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피해 여성은 고민 끝에 이씨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그리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담당했던 강력 1팀이 다른 사건으로 잠복을 나간 상태였다. 심형사와 이형사가 사건에 투입된다. 두 형사는 커피숍 밖에서 잠복해 있다가 이씨를 뒤따라가 체포할 계획을 세운다.
커피숍으로 따라 들어간 심형사는 이씨에게 미란다 원칙을 말하는데 용의자 이씨가 손쓸 틈도 없이 심형사 심장에 그대로 칼을 꽂았다. 커피숍은 난리가 나고 이 형사는 이씨와 몸싸움을 했다. 이 형사 역시 이씨의 칼을 맞았다.
두 형사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 구급차에서 사망한다.
이씨는 커피숍에서 3분만에 두 형사를 살해하고 택시를 탔다. 당시 이씨는 택시기사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택시를 탄 이씨는 빠르게 사건 현장을 빠져나갔다. 결국 이씨는 추격하는 경찰을 따돌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경찰은 곧바로 택시의 GPS를 확인하고 위치로 찾아갔는데 그 이후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이씨가 GPS를 떼버린 것이다. 이씨의 택시는 영등포에서 발견되었는데 빈 택시에는 피 묻은 바지만 발견되었다.
경찰은 이씨를 전국에 공개수배한다. 제보전화는 하루에 70여통으로 빗발쳤다. 하지만 그 전화중에 결정적인 제보는 없었다.
사건 발생 3일 째
이씨의 꼬리가 잡히는데 자신의 아이디로 인터넷을 접속한 것이다. 추적 결과 장소는 성북구의 한 아파트였다. 경찰은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모든 주택을 조사했는데 이씨를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 아이디는 한 초등학생의 것이었다. 알고보니 초등학생이 수배 전단지에 있던 이씨의 주민등록 번호를 보고 인터넷에 가입을 한 것이다. 당시에는 수배 전단지에 주민등록 번호를 기재했다고 한다. 200여명의 경찰이 투입된 검거작전은 헛수고가 되었다.
당시 이씨에게 걸린 포상금은 5천만 원이었다.
| 공포의 인진극
할머니 살고 있던 빌라는 1층으로 용의자 이씨는 작은방 창문을 통해 침입했다. 할머니는 뉴스에 나온 이씨를 알아봤다. 손자가 안방에 자고 있다는 걸 인지한 할머니는 범인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할머니는 밥을 못 먹었을 이씨에게 배고프냐며 국수를 삶아주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자신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기사를 보고 싶다고 하는 이씨에게 할머니는 컴퓨터가 있는 작은 방을 안내해 주었다. 할머니는 청소기를 보고 소음을 이용해서 아들에게 몰래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씨가 할머니의 집에 침입한지도 4시간이 넘어갔다. 할머니의 이 계획은 성공을 한다. 할머니는 이씨에게 청소를 좀 하겠다고 하고 청소기의 전원을 켜두고 아들에게 전화를 한다.
아들은 처음에 엄마의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경찰에 신고를 한다. 할머니는 이씨에게 손자 목욕을 시키겠다고 한다. 할머니는 곧 경찰이 집으로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손자와 같이 있을 안전한 곳으로 욕실을 선택한 것이다.
작은방 창문으로 침입한 경찰은 이씨에게 칼을 버리라고 하는데 이씨는 들고 있는 칼로 자신의 배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이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범인이 잡혔다는 이야기에 병원으로 찾아간 심형사의 동료는 범인의 어깨에 선명하게 찍혀있는 이 자국을 보고 칼에 찔려 가면서 범인을 물어 뜯는 형사를 생각하며 울컥했다.
그렇게 이씨의 8일간 도주는 끝이 났다.
법원은 경찰 두명을 살해한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 한다. 이씨는 억울하다며 항소를 한다.
[최종 판결]
피고인은 이미 여러 차례 절도나 폭력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고
정당한 공무를 수행하던 경찰관을 칼로 찔러 잔인하게 살해하였는 바,
중형에 처하여야 할 사정이 있음은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출소 이후 택시 기사로 근무하며 나름대로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해 온 점,
자신을 체포하려는 경찰관들을 보고 저지른 우발적 범행이라는 점,
깊이 참회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비추어 볼 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부당하다. 따라서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경찰 동료와 유가족은 우발적 범행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계획적이냐 우발적이냐에 따라 죗값의 무게는 달라진다. 이씨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 칼을 들고 들어갔고 자신의 택시를 사건 현장 건너편에 주차시켜놓았다. 이것을 우발적 범행이라고 볼 수 있나?
이씨 검거에 도움을 준 할머니는 이씨 감형 소식에 해외로 이민을 가야했다. 이씨가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72조(가석방의요건)
징역이나 금고의 집행 중에 있는 사람이 행상이 양호하여
뉘우침이 뚜렷한 때에는 무기형은 20년으로 가석방을 할 수 있다.
두 형사가 떠난지도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씨는 자신의 사건을 다룬 기사를 보고 기자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사건을 되새김으로써 자신의 가족들이 받을 상처를 헤아려서 이런 기사를 쓰는 것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두 형사의 유가족에게는 사과를 전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구독 부탁드려요
* 인용된 사진과 문구는 해당 방송국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