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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그리고 교양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71회 1998 회장님의 빅 이벤트 '이봐 해봤어?' 사상 초유의 수송 작전! 꼬꼬무 정주영회장

by 드라마 보는 망고 202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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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드라마 보는 망고예요.

오늘은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주제는 정주영 회장 이야기입니다. 

전례없는 빅 이벤트!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71회 줄거리 리뷰 시작합니다.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70회 줄거리 리뷰 꼬꼬무 조영래변호사 (tistory.com)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70회 줄거리 리뷰 꼬꼬무 조영래변호사

안녕하세요~ 교양 보는 망고예요. 오늘 꼬꼬무는 '0원짜리 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담당했던 사건 중에 부천 성고문 사건을 재조명합니다. 언론은 침묵했고 가해자인 경찰과 이를 수사하는 검찰

youngandyoung.tistory.com

 

출  연  진 :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
초대손님 : 김진수, 키노, 케이

 

1970년대 자동차 독자 개발을 선언한 정주영 회장. 

이봐, 해보기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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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우여곡절을 겪다가 포니를 만들어 낸다.

 

1970년대 대한민국은 조선소를 지을 돈, 장비, 기술 아무것도 없었다. 정주영 회장은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돈을 빌리기 위해 영국으로 날아간다.

 

어렵게 잡은 미팅자리에서 정주영 회장은 우리나라 500원 지폐 뒷면에 있는 거북선을 보여준다.

우리는 수 백 년 전에 철갑선을 만든 나라입니다.

돈이 없어서 그렇지  배를 만들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정주영 회장. 영국은 돈을 빌려주는 대신 조건을 제시한다.

영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조선소를 지어서 당신 배를 만들어 줄테니 사라고 한 정주영 회장에게 그리스 선박왕은 알겠다고 한다. 그 계약서를 들고 영국 정부에 간 정주영 회장은 돈을 받아낸다.

 

 

 

1982년 4월 충남 서산

정회장은 살아생전에 나라가 잘되려면 넓은 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간척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간척 사업이 생각처럼 안되는걸 지켜 보던 정회장은 

바위를 묶어서 한꺼번에 떨어뜨리면 어떻겠나?

 

성공적으로 물길을 막아낸다.

 

6.4km의 제방을 쌓던 직원들은 난관에 부딪친다. 방조제를 270m를 남겨두고 조수 간만의 차로 드나드는 바닷물이 빨라지면서 초속 8m 이르게 된다. 아무리 큰 바위를 떨어뜨려도 휩쓸려 나가기 일수였다. 손실비용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직원들은 점점 지쳐갔다.

 

정주영 회장의 생각은 방조제 남은 구간에 폐선박을 가라앉혀서 거센 물살을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1984년 2월 25일 서산에서 출발한 폐선박

이 공법은 "정주영 공법"으로 불린다. 45개월로 예상한 공사는 단 9개월만에 끝난다. 성공적으로 끝난 간척사업으로 늘어난 영토는 4,700만 평으로 여의도 면적의 33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방조제로 새로 생긴 구역은 염분을 뺀 뒤 농지로 만들었다. 그날부터 회장님의 관심사는 서산농장으로 쏠리게 된다.

어린시절 농사꾼의 장남으로 태어난 장주영회장은 학교도 못가고 새벽부터 농사를 지어야했다. 그게 지긋지긋했던 어린 정주영은 집을 가출해서 쌀가게에서 일을 했다. 열심히 일했던 정주영 회장을 이쁘게 봤던 쌀가게 주인은 정주영 회장에서 월급으로 남들의 2배인 쌀두가마니를 주었다. 정주영 회장이 성공하기 전에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후회가 많았던 정주영 회장은 농사에 대해 항상 진심이었다.

 

처음에 소 50마리로 시작한 축사는 몇년 만에 3,500마리가 된다. 관리에 한계를 느낀 직원들이 소를 팔자고 했지만 정회장은 가지고 있으라고 한다.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시작되면서 대대적인 대북정책이 발표된다. 경제적 지원으로 북한의 마음을 열자는 것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자신과 소들이 육로로 북한으로 가겠다고 했다. 

 

당시 남한의 반응은 물론 북한의 반응까지 싸늘했다. 며칠후 북한은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며 판문점으로 건너오라고 한다.

 

현대가 소를 가지고 온다는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바로 판문점으로 오라고 한다. 정주영 회장은 소를 가지고 간다면 육로로 평양을 갈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1차 500마리, 2차로 500마리 총 1,000마리를 보내기로 한다.

 

소를 싣고갈 트럭이 필요했는데 정회장은 자동차 공장에서 며칠동안 트럭만 생산했다고 한다.

 

북한은 구제역 위험이 있어서 북으로 넘어간 차량은 다시 남한으로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트럭도 전부 북한에 주고 오기로 결정한다.

정회장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고없이 마무리된 소떼 이벤트

 

북한에 간 정주영 회장은 공연도 보고 금강산 관광도 하고 고향에 방문해 북에 있던 친척과 상봉도 했다.

 

6월 22일부로 합의한 금강산지구관광개발사업과 관련하여
금강산관광개발 추진위원회를 내오고 희망하는 대내외의
모든 개인 또는 단체들이 여기에 참가하도록 한다.
본 위원회 위원장직은 정주영 회장이 맡으며 본 위원회 밑에
연락협의회를 두고 수시로 협의하면서 본 사업을 운영추진하기로 한다.
1998년 6월 22일

 

정주영 회장은 9년 전에 이미 대북사업계획이 있었지만 계획만 하고 진행되지는 않았다. 

 

추가로 소 500마리를 보내는 날 정주영 회장은 1마리를 추가한 501마리를 보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외부 인사를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정주영 회장이 북에서 돌아온지 한달도 안되서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다.

 

2003년에는 금강산 육로관광을 시작했다.

 

195만명

 

개성공단에서 2004년 12월 국내로 반입된 최초의 시제품은? 

 

북에서 온 통지문
지난 8월까지 15마리의 소가 죽었고 8마리의 소가 폐사 직전에 처해있음
남조선에서 소들이 폐사되도록 소들에게 소화될 수 없는 불순 물질들을 먹이는
추악한 범죄를 저질렀음

 

북측은 죽은 소들을 부검했더니 비닐과 밧줄이 나왔다고 한다. 정부는 급하게 북으로 조사단을 파견해 죽은 소들과 국내에 소들을 점검했다. 조사 결과 비닐과 밧줄은 우리나라에서 들어간게 맞았다.

 

소를 방목해서 키운 간척지는 예전에 김 양식장이었다. 땅속에 남아있던 비닐과 밧줄을 소들이 먹은것이었다. 국내에 소들은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북한에 간 소들만 죽은 이유는 장시간 수송으로 인한 수송열때문이었다.

 

소들은 장시간 수송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낯선 북한 환경에 적응 못하고 죽은것이었다.

 

2008년 7월 11일에 금강산 관광객이 출입금지구역에 들어갔는데 관관객이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사업은 중단된다.

 

2001년 정주영 회장이 타계했을때 전례없이 북한 조문단이 장례식장을 찾아왔었다.

 

'그날'의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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